2000년대 중후반서 2010년 초
‘참여+확산’에 2세대 한류 새길
디지털이 만든 한류 팬덤 공동체

“한류=세련됨·혁신·신뢰” 인식
‘K-산업’ 먹거리 전반 파생 효과

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우수성이 세계를 사로잡는 매력으로 자리매김한 현상이다. 드라마와 K-pop으로 시작된 파급력은 영화·게임·웹툰·패션 등 다층적 문화 영역으로 확산하며 세계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이는 한국이 문화 수용국을 넘어 세계 문화 ‘선도 국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적 징표다. 특히 한류는 단순한 대중문화의 흐름을 넘어, 정치·경제·외교의 영역까지 파급력을 발휘하는 소프트 파워로 부상하고 있다. 본지는 한류 30년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국 문화가 어떻게 세계를 매혹시키고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지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올드보이 포스터, 드라마 꽃보다 남자 포스터, 소녀시대 지니, 슈퍼주니어 쏘리쏘리, 원더걸스 노바디, 영화 괴물, 빅뱅 지드레곤. (출처: 기획사 유튜브 공식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다음 영화. 배급사 포스터) ⓒ천지일보 2025.09.14.
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올드보이 포스터, 드라마 꽃보다 남자 포스터, 소녀시대 지니, 슈퍼주니어 쏘리쏘리, 원더걸스 노바디, 영화 괴물, 빅뱅 지드레곤. (출처: 기획사 유튜브 공식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다음 영화. 배급사 포스터) ⓒ천지일보 2025.09.14.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2000년대 중후반, 한류는 새로운 도약의 순간을 맞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한국 드라마와 가요는 세계 문화시장에서 눈에 띄는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인터넷 환경의 급격한 발전과 디지털 플랫폼의 대중화가 있었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공유 서비스,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는 한국 콘텐츠를 빠르고 폭넓게 확산시키는 결정적 도구가 됐다. 방송사와 음반사 중심으로 유통되던 1세대 한류와 달리, 2세대 한류는 팬들이 직접 영상에 자막을 입히고 공유하면서 ‘참여와 확산’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됐다.

◆디지털 플랫폼 타고… K-pop, 아시아 넘어 세계로

이 시기 한류 중심에는 단연 K-pop이 있었다. 2007년 데뷔한 소녀시대는 ‘Gee(2009)’ ‘소원을 말해봐(2009)’ ‘Oh!(2010)’와 같은 곡으로 아시아 전역을 사로잡았다. 특히 ‘Gee’는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일본,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팬들 사이에서 ‘국민 걸그룹’ 이미지를 굳혔다.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Sorry Sorry, 2009)’는 중독성 있는 후렴과 강렬한 안무로 필리핀, 태국, 대만에서 커버댄스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해외 팬들이 직접 플래시몹을 조직해 무대를 재현하는 현상까지 이어졌다. 원더걸스는 ‘노바디(Nobody, 2008)’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대중음악이 서구 주류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빅뱅은 ‘거짓말(2007)’ ‘하루하루(2008)’ 같은 곡으로 세련된 사운드와 스타일리시한 패션을 선보였고, 지드래곤을 비롯한 멤버들은 음악과 패션을 넘나드는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2NE1은 ‘파이어(Fire, 2009)’, ‘아이 돈 케어(I Dont Care, 2009)’로 당대 걸그룹의 전형을 뒤흔들며 ‘걸크러시’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전 세계에 심어줬다.

당시 K-pop은 글로벌 음악 시장의 트렌드를 흡수하면서도 한국적 기획력으로 차별화됐다. 빅뱅은 힙합과 일렉트로닉을 혼합해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선보였고, 소녀시대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팬심을 사로잡았다. 원더걸스는 1980년대 레트로 감성을 재해석해 세계적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국의 기획사 시스템은 연습생 시절부터 철저한 트레이닝을 거쳐 완성도 높은 퍼포머를 배출했고, 이는 해외 언론이 주목하는 산업 모델로 자리 잡았다. CNN 한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을 집중 보도하며 “음악 산업 내 기존의 어떤 것과도 다르다”라고 평가했다. 가디언도 한 기획사의 연습생 훈련 과정을 보도하면서 “아이돌 문화가 단순한 음악 활동을 넘어 국가 브랜드와 문화 전략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했다. 유튜브는 신곡이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는 창구가 되었고, 팬들은 댓글과 ‘좋아요’를 통해 직접 반응을 기록했다. 해외 팬들은 영어·스페인어·아랍어·포르투갈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제작해 배포했고,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과 커버댄스는 또 하나의 문화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히잡을 쓴 팬들이 슈퍼주니어 응원봉을 흔드는 장면은 당시 아랍 언론에서 보도됐다. 디지털은 한류 팬덤을 국경 없는 공동체로 만들었고, 이는 2세대 한류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였다.

◆드라마·영화가 이어간 한류의 맥

드라마 역시 여전히 한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꽃보다 남자(2009)’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청춘 로맨스로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주연배우 이민호는 단숨에 ‘아시아 프린스’로 떠올랐다. ‘아이리스(2009)’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헝가리·일본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며 블록버스터급 제작비와 스케일을 자랑했다. 첩보 액션과 멜로를 결합한 이 작품은 일본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DVD 판매와 방송 판권 수익으로도 크게 주목받았다. ‘시크릿 가든(2010)’은 판타지와 로맨스를 절묘하게 결합하며 해외 팬들에게 신선한 매력을 선사했다.

영화도 2세대 한류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해외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뒤, DVD와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해외에서 재조명되며 ‘코리안 뉴웨이브’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 ‘왕의 남자(2005)’는 일본과 중국에서 흥행하며 한국 영화가 본격적으로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음악, 드라마, 영화가 삼각축을 이루며 2세대 한류를 이끌었다.

◆경제 전반에 파급된 한류 효과

한류는 이 시기 문화 간 경계 허물기를 가속화했다. 한국 드라마를 본 해외 팬들이 OST를 찾아 K-pop으로 유입되고, K-pop 팬들은 뮤직비디오 속 패션과 화장품을 모방하며 K-뷰티로 관심을 확장했다. 한국 아이돌이 착용한 의상이나 사용하는 화장품은 곧바로 ‘완판’으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 경제와 연관 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했고, 명동과 동대문은 해외 팬들로 붐볐다. 코엑스와 잠실에서 열린 대형 K-pop 콘서트는 인근 숙박·음식·교통업계 매출을 수십 퍼센트 끌어올렸고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외국인 관광객 수는 880만명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과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와 남미에서 ‘한류 관광 패키지가 등장했고, 관광객들은 공연 관람과 촬영지 방문, 쇼핑을 결합해 소비를 확대했다. ‘겨울연가’ 촬영지였던 남이섬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붐볐고, ‘꽃보다 남자’ 촬영지였던 신촌·명동 거리 역시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뷰티와 패션 산업도 한류 덕을 톡톡히 봤다. 소녀시대, 빅뱅, 2NE1 등 당대 아이돌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한 화장품 브랜드는 해외에서 매출이 급증했다. 2009년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고, K-뷰티는 K-pop과 함께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빅뱅 멤버들이 착용한 의상이나 액세서리는 발매 즉시 품절되며 ‘완판 신화’를 만들었고, 이는 국내 중소 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 기회를 열어줬다.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문화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확대했다. KOTRA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해외에서 ‘K-pop 콘서트+상품 박람회’를 결합한 행사들을 개최했고, 이는 한국 기업 제품이 자연스럽게 홍보·판매되는 기회가 됐다. 한류는 단순히 문화 콘텐츠 수출을 넘어, 자동차·가전·IT 산업 등 다른 분야의 한국산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다. 외국 소비자들에게 “한류=세련됨·혁신·신뢰”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한국 브랜드 전반이 혜택을 입는 파급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2세대 한류는 과제도 안고 있었다. 일부 그룹은 표절 논란에 휘말렸고, 지나치게 치열한 경쟁과 기획사 중심의 시스템은 아이돌의 노동 환경 문제를 드러냈다. 중국은 자국 문화산업 보호를 이유로 한국 드라마와 가요의 방영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이는 이후 ‘한한령’으로 이어지는 전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환경을 발판으로 성장한 2세대 한류는 한국 문화가 더 이상 지역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세계 시장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시기의 성취는 이후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와 같은 3세대 한류의 폭발적 성장을 가능케 한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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