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우수성이 세계를 사로잡는 매력으로 자리매김한 현상이다. 드라마와 K-pop으로 시작된 파급력은 영화·게임·웹툰·패션 등 다층적 문화 영역으로 확산하며 세계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이는 한국이 문화 수용국을 넘어 세계 문화 ‘선도 국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적 징표다. 특히 한류는 단순한 대중문화의 흐름을 넘어, 정치·경제·외교의 영역까지 파급력을 발휘하는 소프트 파워로 부상하고 있다. 본지는 한류 30년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국 문화가 어떻게 세계를 매혹시키고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지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태동, 1990년대~2000년대 초

한류 출발점은 ‘사랑이 뭐길래’

팬덤 일으킨 ‘겨울연가·대장금’

산업·정책·창작·팬덤 융합 성과

외교무대서도 ‘설득 자산’으로

1세대 유산, 지속가능한 구조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한국의 드라마와 K-pop으로 시작된 문화의 물결은 이제 전 세계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며, 한국을 문화 수입국이 아닌 문화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오늘날 우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BTS의 빌보드 1위,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신드롬 같은 성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이 거대한 흐름의 출발점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드라마와 1세대 K-pop 스타들이 만들어낸 ‘첫 물결’이다. 이 시기는 콘텐츠의 기획·제작 시스템이 정교해지고, 국가 이미지와 산업 구조가 함께 변모한 분기점이었다.

◆ ‘사랑이 뭐길래’로 중국서 싹튼 한류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1993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드라마의 중국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한류의 씨앗이 뿌려졌다.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서 비상한 인기를 모으자 현지 언론은 한국 문화의 급부상을 가리켜 ‘한류(韓流, Korean Wave)’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이 명명은 단지 신조어의 탄생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가 지역을 넘어 흐르는 일종의 동력과 방향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뜻했다. 

당시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방송·음악 산업은 케이블·위성 채널 확장과 함께 기획 시스템을 재편했고, 제작사는 해외 편성 시간을 겨냥해 포맷과 러닝타임, 음악적 훅과 안무의 완성도까지 조율했다. 

중국·대만·홍콩 등 중화권 플랫폼은 새롭고도 가족친화적인 장르의 한국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 풀을 넓혔고, 아이돌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K-pop은 공연·팬클럽·굿즈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 시기 한류는 ‘신선함’과 ‘동질감’이라는 두 축으로 소비됐다. 동아시아의 일상적 가치와 정서에 맞춘 이야기, 세련된 미장센과 트렌디한 음악은 국경을 건너도 큰 저항 없이 수용됐다.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성장’과 ‘가족·우정·사랑’ 같은 보편 주제가 문화적 장벽을 낮췄다.

◆일본 흔든 드라마 겨울연가의 파급

KBS 드라마 ‘겨울연가’
KBS 드라마 ‘겨울연가’

한류가 진정한 ‘현상’으로 도약한 순간은 2002년 KBS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 상륙하면서다. 최지우·배용준이 그려낸 서정적 멜로드라마는 중년 여성 시청자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NHK 채널에서 이례적 재방송을 이끌어냈다. 시청률 고공행진과 함께 등장한 현상은 스크린 밖에서 더 강렬했다. 촬영지였던 춘천과 남이섬으로 일본 관광객이 몰리며 지역 경제가 살아났고, 배용준은 ‘욘사마’라는 별칭과 함께 문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팬덤은 단순한 시청자 집단이 아닌, 소비와 이동을 촉발하는 ‘행동하는 대중’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방송사·지자체·관광업계는 드라마 IP를 활용한 로케이션 투어, OST 콘서트, 기념상품 등 ‘경험형 관광’을 결합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일본 내 민영방송사들도 경쟁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편성하며 콘텐츠 수급 시장을 넓혔고, 이는 포맷·리메이크·공동제작으로 이어지는 협업 구조의 초석이 됐다. 

겨울연가의 성공은 한류가 단지 스크린의 감동에 머물지 않고, 도시 브랜드와 국가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문화 인프라’임을 입증했다. 감성의 공유는 곧 이동의 동기였고, 이동은 체류와 소비를 낳았다. 한 편의 드라마가 관광 루트를 만들고, 배우의 미소가 지역 상권을 살리는 일, 이것이 한류가 보여준 문화자본의 현실적 효과였다.

◆전통의 서사 대장금과 1세대 K-pop 

MBC ‘대장금’
MBC ‘대장금’

‘겨울연가’가 일본 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면, 2003년 MBC ‘대장금’은 한류의 지평을 세계로 확장했다. 궁중 요리와 의학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전통문화의 디테일, 여성 주인공의 성취 서사를 결합해 중동·동남아·중남미까지 시청층을 키웠다. 음식·복식·의학 등 생활문화 요소가 드라마 서사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한국다움’이 이질감이 아닌 매력으로 인식됐다. 

수출 지역의 다변화는 방송권·광고·2차 판권을 넘어 한식·한복·뷰티 등 연관 산업으로 강력한 파급을 낳았다. 드라마의 성공 방정식, 보편감정‧디테일‧완성도는 K-pop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H.O.T.·젝스키스가 중화권에서 구축한 팬덤의 토양 위로, 보아는 2002년 일본 오리콘 1위라는 상징적 성취를 이루며 ‘현지화 전략’의 교과서를 썼다. 

발음·콘셉트·프로모션을 현지 시장에 맞춘 정교한 기획, 연습생 시스템이 만든 퍼포먼스의 완성도, 뮤직비디오와 안무 중심의 시각적 스토리텔링이 삼위일체로 작동한 것이다. 

뒤이어 동방신기·슈퍼주니어 등은 공연 동선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하며 팬덤의 집합적 경험 즉 응원법, 굿즈, 팬미팅을 산업의 표준으로 정착시켰다. 이 시기 K-pop은 ‘노래’가 아니라 ‘패키지’로 소비됐다. 음악·퍼포먼스·패션·서사가 합쳐진 총체적 경험은 국경을 넘어 복제 가능했고, 디스코그래피는 곧 세계관이자 참여형 놀이가 됐다. 

그 결과 한류는 ‘보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수동적 감상에서 능동적 참여로 진화했다. 이러한 참여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초기에 확산된 P2P·팬서브 문화, 이후 유튜브·SNS 플랫폼과 결합하며 ‘자발적 유통망’을 탄생시켰다.

◆첫 한류 가장 큰 유산 ‘지속가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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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첫 물결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지속가능한 구조’다. 콘텐츠의 기획·제작·유통·팬덤·관광·브랜드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초기에 이미 가동됐고, 이는 훗날 BTS·블랙핑크, 기생충·오징어 게임으로 이어지는 초국가적 파급의 기반이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이 흐름을 가속화했다. 스포츠 이벤트는 국경·언어·정치의 장벽을 낮추는 축제의 언어였고, 드라마·음악으로 구축된 친숙함은 개최국 한국에 대한 호감을 구체적 체험으로 전환시켰다. 외교·경제 영역에서도 한류는 ‘설득의 자산’으로 기능했다. 콘텐츠가 만든 선호와 신뢰는 제품 구매와 투자, 관광, 교육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는 다시 문화산업에 재투자되며 선순환을 형성했다.

가수 보아
가수 보아

돌이켜보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간은 거대한 파도의 서막이었다. 중국에서의 초기 전조, 일본을 뒤흔든 겨울연가, 전 세계의 문을 연 대장금, 그리고 보아·동방신기·H.O.T.로 상징되는 1세대 K-pop의 질주. 이 모든 조각이 맞물려 ‘한국은 재미있고, 아름답고, 믿을 만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드는 나라’라는 집단 기억을 세계에 심었다. 

가수 동방신기 최강창민, 유노윤호.
가수 동방신기 최강창민, 유노윤호.

한류의 첫 물결은 결코 폭죽처럼 꺼지는 반짝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산업·정책·창작·팬덤이 동시 호흡한 시스템의 성취였고, 한국이 문화 수용국에서 ‘선도 국가’로 나아가는 변곡점이었다. 이제 거센 두 번째, 세 번째 물결은 이 초석 위에서 더 멀리, 더 깊이, 더 넓게 뻗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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