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8단체 공동 입장 발표
“경영권 보호 외면… 깊은 유감”
입법 부작용 최소화 강력 촉구
“이사회 ‘콩가루’ 상태 될 수도”

[천지일보=유영선·김정필 기자] 경제계가 25일 국회를 통과한 일명 ‘더 센’ 상법 개정안에 대해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재계는 이번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과 소송 리스크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는 이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지난 7월 1차 상법 개정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추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과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회는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경제계는 이어 “기업이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하고, 배임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경제형벌과 기업 규모별 차등규제·인센티브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기업이 혁신과 성장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영판단원칙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주의 의무를 다해 경영상 결정을 내린 경우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 제도다. 반면 배임죄는 구성 요건이 모호하고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2차 상법 개정안은 지난달 3일 국회를 통과한 1차 개정안의 후속 입법 성격을 띤다. 1차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했으며, 이번 추가 개정안은 경영권 구조와 주주 권한 배분에 더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재계와 전문가들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대주주 경영권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이사 수를 7명으로 가정했을 때 최대 주주 측이 확보할 수 있는 이사는 2~3명에 불과하고, 2대 이하 주주가 선임할 수 있는 이사가 4~5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며 “이사회가 대주주 의사와 상충될 경우 경영 효율성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는 이사들은 대주주 의결권이 3%에 불과해 사실상 소액주주 몫으로 돌아간다”며 “대주주 측이 원하는 의사결정을 이사회가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사회가 ‘콩가루’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계의 우려는 실제 현장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대한상의가 30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동시에 적용될 경우 경영권 위협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74%에 달했다.
최 교수는 “집중투표제는 대주주뿐만 아니라 2대·3대 주주도 이사를 선임할 권리를 확보하게 한다. 이는 미국 엘리엇 매니지먼트 사례처럼 외국 자본의 영향력 확대와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는 법적 보완책이 없어 재개정 외에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실상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이번 개정안이 기업 성장과 혁신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국가와 군대, 기업 모두 효율적 지휘 체계가 필요하다. 이사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하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