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신현배
오랜 옛날,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겼을 때 이 세상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하늘과 땅이 오늘날처럼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혼돈 상태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았다. 어느 날 하늘과 땅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떨어져 위는 하늘, 아래는 땅으로 갈라진 것이다. 땅에서는 산이 솟아오르고 골짜기가 생겨 물이 흘러내렸다. 그 물은 아래로 흘러내려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었다.
또한 하늘에서는 푸른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검은 이슬이 솟아올랐다. 푸른 이슬과 검은 이슬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 세상에는 만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반짝이는 별이었다. 견우성, 직녀성, 노인성, 북극성 등이 하늘의 동서남북을 채우고 크고 작은 별들이 하나둘 밤하늘에 나타났다. 그리고 땅에서는 온갖 풀과 나무, 물고기, 짐승, 사람까지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 때까지도 세상은 어두컴컴했다. 아직 해와 달이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의 닭이 날개를 치며 목을 길게 빼고 우렁차게 울었다. 그러자 먼동이 트기 시작하더니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올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저녁이 되자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그런데 달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이렇게 해와 달이 두 개씩이나 하늘에 떠 있으니 괴로운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생물들이었다. 낮에는 찌는 듯한 더위, 밤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사람과 짐승은 물론 풀과 나무까지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들은 수다쟁이여서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그러다 보니 온 세상이 무지무지 시끄러웠다. 게다가 그 때는 사람과 귀신의 구별이 없었다. 귀신을 부르면 사람이 대답하고 사람을 부르면 귀신이 대답해 세상이 뒤죽박죽이었다.
이 때 하늘나라 임금은 옥황상제였다. 그는 신들이 사는 하늘나라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인 이승과 죽은 사람들의 세상인 저승도 다스리고 있었다. 그래서 ‘천지왕’이라고 불렸다. 천지왕은 이승을 내려다볼 때마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은 혼란에 빠져 있고 모든 생물들이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을 바로잡아야 할 텐데 큰일이구나.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천지왕은 밤늦게까지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고민을 하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든 천지왕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해와 달을 하나씩 꿀꺽 삼키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천지왕은 생각에 잠겼다.
‘으음, 이 꿈은 아이를 얻을 태몽이 틀림없어.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자식이 생기면 이승과 저승을 맡겨 다스리게 하면 되겠구나.’
그러나 천지왕은 장가를 들지 않아 아내가 없었다. 자식을 얻으려면 먼저 결혼을 해야 했다.
하늘나라에는 신부감이 없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랬더니 지국성이란 곳에 사는 슬기 부인의 딸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이름은 총명으로, 이름에 어울리게 영리하고 재주가 있는 처녀였다.
‘옳지, 저 처녀를 아내로 삼으면 되겠구나.’
천지왕은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그는 총명 처녀의 집을 찾아가서 말했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하룻밤 신세를 졌으면 합니다.”
“집 안이 누추한데…. 괜찮으시다면 안으로 드시지요.”
총명 처녀는 천지왕에게 방 하나를 내주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손님에게 저녁을 대접해야 하는데 쌀이 한 톨도 없네. 이를 어쩌지?’
총명 처녀는 손님을 굶길 수 없었다. 그녀는 쌀을 꾸어 오려고 빈 바가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 마을에는 수명장자라고 하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총명 처녀는 수명장자의 집에 가서 쌀 한 되를 꾸었다. 그런데 수명장자는 쌀을 내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꾸어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 두 배로 갚아야 한다는 것 잊지 말고….”
총명 처녀는 바구니에 쌀을 담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쌀은 형편없었다. 하얀 모래가 반 되나 섞여 있어 쌀을 열 번이나 일었다. 그러나 그렇게 밥을 지어도 모래를 걸러내지는 못했다. 천지왕은 첫 숟가락에 모래를 씹고 말았다.
“우드득!”
천지왕은 얼굴을 찡그리며 모래를 뱉었다. 그러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밥에 모래가 그득하니 어찌 된 일이오?”
“죄송합니다. 쌀이 떨어져 수명장자 댁에 가서 쌀을 꾸어 왔는데 반은 쌀이고 반은 모래였습니다. 그래서 열 번이나 쌀을 일었는 데 여전히 모래가 남아 있었나 봅니다.”
“가난한 처녀에게 쌀을 꾸어 주면서 절반이나 모래를 섞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군.”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수명장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처럼 못된 짓을 해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쌀을 꾸어 달라고 하면 하얀 모래를 섞어 주고, 좁쌀을 꾸어 달라고 하면 검은 모래를 섞어 준답니다. 그것도 절반이나 작은 되에 담아서요. 그리고는 꾸어 준 곡식을 받을 때는 큰 되로 꼭 두 배를 받아 내지요.”
“아주 괘씸한 놈이로구나.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수명장자의 자식들도 아버지 못지않습니다. 수명장자의 딸은 일꾼들을 부리면서 점심때 썩은 장을 먹인답니다. 자기네 식구들에게는 좋은 장을 먹이고요. 그리고 수명장자의 아들은 말과 소에게 물을 먹여 오라고 하면 오줌을 누여 발굽에 적신답니다. 물가에 다녀온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요. 그렇게 해서 말과 소에게 물까지 굶겼으니 먹이야 어디 제대로 주었겠습니까?”
천지왕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천하에 못된 집안이로구나.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나쁜 짓만 골라 해? 이놈들에게 천벌을 내려야겠다.”
천지왕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벼락장군 내려오너라! 벼락사자 내려오너라! 우레장군 내려오너라! 우레사자 내려오너라! 화덕진군 내려오너라! 화덕사자 내려오너라!”
이윽고 하늘나라에서 여러 장군과 사자들이 내려왔다. 천지왕은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수명장자의 집에 불을 질러라!”
“예, 알겠습니다.”
장군과 사자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수명장자의 집에 불을 질렀다. 수명장자의 집은 홀딱 다 타서 잿더미만 남았다. 그리고 수명장자와 그 식구들은 모두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천지왕은 다시 또 명령을 내렸다.
“수명장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쌀을 가지고 장난쳤으니 큰 벌을 받아야 한다. 지옥으로 쫓아 보내 3만 년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마라. 그런 다음 지옥에서도 내쫓아 객귀(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가 되어 떠돌아다니게 하라.”
천지왕은 수명장자의 자식들에게도 벌을 내렸다.
“수명장자의 딸은 일꾼들에게 못된 짓을 했으니 엉덩이에 부러진 숟가락을 꽂아 팥벌레로 태어나게 하라. 그리고 수명장자의 아들은 말과 소에게 몹쓸 짓을 했으니 솔개로 태어나게 해 꼬부라진 부리로 비 온 뒤에 날개에 고인 물을 핥아먹게 하라.”
천지왕은 슬기 부인을 만나 총명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슬기 부인의 허락을 얻어 총명 처녀와 결혼을 했다. 천지왕은 부인과 스무하루를 같이 보냈다. 그러고는 하늘나라로 돌아가며 부인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중에 쌍둥이 아들 형제를 낳으면 큰아들은 대별왕, 작은아들은 소별왕이라 이름을 지으시오.”
그러면서 천지왕은 박씨 두 개를 건네주었다.
“나는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천지왕이오. 아들들이 자라서 나를 찾으면 이 박씨를 하나씩 주어 1월 첫 돼지날에 마당에 심으라고 이르시오. 그러면 덩굴이 자라 하늘을 향해 뻗어 나를 만나러 올 수 있을 거요.”
총명 부인은 천지왕이 하늘나라로 돌아간 뒤 배가 불러와 쌍둥이 아들 형제를 낳았다. 그녀는 천지왕이 일러 준 대로 큰아들은 대별왕, 작은아들은 소별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들 형제는 씩씩하게 잘 자라 글방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없다고 글방에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어느 날 형제는 엉엉 울며 돌아와 어머니 총명 부인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없어요?”
총명 부인이 대답했다.
“너희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계신다. 하늘나라 임금 천지왕이 너희 아버지란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으면 1월 첫 돼지날에 마당에 박씨를 심어라.”
총명 부인은 두 아들에게 천지왕이 주고 간 박씨를 하나씩 주었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이듬해 1월 첫 돼지날에 마당에 박씨를 심었다. 그랬더니 바로 싹이 나서 덩굴이 쑥쑥 자라 하늘 끝까지 뻗어 올랐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박 덩굴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박 덩굴 끝은 임금이 앉는 용상에 닿아 용상의 왼쪽 뿔에 감겨져 있었다. 하지만 천지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의자가 하늘나라 임금님이 앉는 의자로구나.”
“하늘나라 임금님은 어디 가시고 빈 의자만 있는 거지?”
형제는 용상에 서로 앉으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다가 그만 용상의 왼쪽 뿔이 부러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 임금의 용상에는 왼쪽 뿔이 없게 되었다.
그 때 천지왕이 나타나 형제를 보았습니다. 그는 첫눈에 아들 형제를 알아보았습니다.
“오, 너희들이 대별왕, 소별왕이구나. 아버지가 없어도 잘 자라 주었어.”
천지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들들을 반겼다.
“나는 너희들이 오길 기다렸다. 이제 나를 좀 도와주어라. 나는 하늘나라만 맡을 테니 너희들이 인간 세상을 맡아라. 대별왕은 이승을 맡아 다스리고 소별왕은 저승을 맡아 다스려라.”
천지왕은 처음 생각한 대로 쌍둥이 형제에게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그런데 소별왕은 저승보다 이승을 다스리고 싶었다. 그래서 대별왕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이기는 쪽이 이승을 맡자’고 제의했다. 대별왕은 이 제의를 받아들여 먼저 수수께끼를 냈다.
“아우야, 어떤 나무는 일 년 내내 잎이 지지 않는데, 어떤 나무는 잎이 지느냐?”
“형님, 속이 꽉 찬 나무는 일 년 내내 잎이 지지 않고 속이 빈 나무가 잎이 집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갈대는 속이 비어 있어도 잎이 지지 않잖니.”

대별왕은 다시 수수께끼를 냈다.
“아우야, 언덕에 있는 풀과 언덕 아래에 있는 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잘 자라느냐?”
“형님, 비가 오면 언덕에 있는 흙이 아래로 씻겨 내려가 언덕에 있는 풀보다 언덕 아래에 있는 풀이 더 잘 자랍니다.”
“틀렸다. 사람을 좀 봐라. 머리카락은 높은 데 있어도 잘 자라고 발등에 있는 털은 낮은 데 있어도 잘 자라지 못해 짧잖니.”
소별왕은 이번에도 졌다.
‘수수께끼를 해서는 형을 이기지 못하겠어. 다른 내기를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소별왕은 대별왕에게 꽃을 심어 가꾸자고 했다. 잘 가꾸어 크고 탐스러운 꽃을 피운 쪽이 이승을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대별왕과 소별왕은 서천꽃밭에 가서 꽃씨를 얻어와, 저마다 은동이에 심어 싹을 틔웠다. 그리고 온 정성을 다해 꽃을 피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서 보니 형이 피운 꽃은 크고 탐스러운데 동생이 피운 꽃은 작고 시들시들했다. 이렇게 되자 동생은 초조해졌다.
‘이번에도 또 형에게 지겠는걸. 안 되겠다. 꾀를 내어 형의 꽃과 내 꽃을 바꿔치기해야겠다.’
소별왕은 이런 생각을 하고 대별왕에게 말했다.
“형님, 꽃을 피우느라 고생 많았지요? 피곤한데 잠이나 푹 자지요. 누구 꽃이 크고 탐스러운지는 자고 나서 확인하고요.”
“그래, 그렇게 하자.”
대별왕은 동생 말을 믿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소별왕은 잠자는 척하다가 형의 꽃과 자기 꽃을 바꿔치기했다. 그러고는 잠시 뒤에 형을 깨웠다.
“형님, 일어나세요. 형님 꽃이 시들어 버린 것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자면 어떡해요?”
대별왕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 동생이 가리키는 꽃을 보았다.
“저런! 내 꽃이 다 시들었네. 이번에는 내가 졌다.”
대별왕은 이렇게 말하고 이승을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형을 속여 이승을 다스리게 된 소별왕은 이승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 되어 이승에 온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인 이승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난장판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속이고 싸우며 온갖 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풀, 나무들까지 떠들어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힘든 것은, 해와 달이 두 개여서 더위를 먹어 죽거나 추위를 타서 죽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별왕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이승을 다스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저승에 가서 형을 만나 자기 사정을 털어놓았다.
“형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아요. 이승을 다스리기가 이처럼 힘든 줄은 미처 몰랐어요. 제발 나를 도와줘요.”
대별왕은 동생의 간절한 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먼저 천 근짜리 활과 화살 두 개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이승으로 가서 해 하나를 겨냥해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해는 동해 바다에 빠져 잠겨 버렸다.
대별왕은 밤이 되기를 기다려 달 하나도 활로 쏘아 맞혔다. 달은 서해 바다에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는 해와 달이 하나씩 남게 되어 더위와 추위로 죽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대별왕은 송홧가루 닷 말 닷 되를 마련하여 온 땅에 뿌렸다. 그랬더니 짐승과 풀, 나무의 혀가 굳어져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은 아주 조용해졌다.
대별왕은 저울로 무게를 달아 백 근이 넘으면 사람으로 하고 백 근이 안 되면 귀신으로 두었다. 이리하여 사람과 귀신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형님, 고맙습니다. 이제부터는 제 힘으로 이승을 다스리도록 하지요.”
대별왕이 저승으로 떠나자 소별왕은 이승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형보다 똑똑하지 못했다. 세상을 정의롭고 공정하게 다스리지 못해 이승에는 아직도 살인자, 도둑, 싸움꾼, 사기꾼이 많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고 한다.

<신화 이야기 해설>
이번 호에 소개한 이야기는 제주의 무속 신화인 <천지왕본풀이>다. 본풀이는 본(本)을 푼다는 뜻으로 무당이 굿을 할 때 제상 앞에 앉아 부르는 신에 관한 노래다. 즉 신이 현재의 면모로서 숭앙받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천지왕본풀이>는 제주에서 하는 큰 굿의 맨 처음인 초감제 때 시행한다. ‘배포도업침’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굿하는 장소를 설명하려고 하늘과 땅이 하나였던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천지개벽, 낮과 밤의 발생 등 자연 현상의 탄생 과정과 국가의 형성 등을 노래를 통하여 전해 오는 것을 말한다.
이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하늘과 땅은 오늘날처럼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붙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과 땅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해 조금씩 떨어져 위는 하늘, 아래는 땅으로 갈라졌다. 또한 산과 바다가 생겨나고 하늘에서는 크고 작은 별들이 나타났으며, 땅에서는 온갖 풀과 나무, 물고기, 짐승, 사람까지도 생겨났다.
흥미로운 것은 해와 달이 하나가 아니라 둘씩 생겨났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이 땅을 살아가는 생물들은 낮에는 찌는 듯한 더위, 밤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고통을 겪는다.
이 때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없앤 것은 하늘나라 옥황상제였던 천지왕의 큰아들 대별왕이다. 그는 천 근짜리 활과 화살 두 개로 해와 달을 겨냥해 쏘아 떨어뜨린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는 해와 달이 하나씩 남게 되어 더위와 추위로 죽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 신화에는 천지왕의 아들인 대별왕, 소별왕이 나온다. 천지왕이 지국성 슬기 부인의 딸인 총명을 통해 낳은 쌍둥이 아들들이다.
이 신화의 하이라이트는 두 아들이 이승과 저승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가 다스릴 세상을 결정하려고 시합을 벌인다. 수수께끼와 꽃 피우기 시합이다. 수수께끼는 지혜를 시험하는 것으로 논리와 추리만 가지고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더욱이 소별왕은 형 대별왕에 비해 지혜도 부족하고 욕심만 가득한 인물이다. 그는 수수께끼로는 형을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다른 내기를 한다. 꽃 피우기 시합이다. 하지만 꽃 피우기 시합에서도 형을 당해내지 못하자 소별왕은 마침내 속임수를 쓰게 된다. 형의 꽃과 자기 꽃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던 대로 이승을 차지한다.
소별왕은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에 비해 대별왕은 큰 능력과 넓은 도량을 가진 인물이다. 현실 속에도 소별왕, 대별왕 같은 유형의 인물이 있다. 신화에는 현실을 나타내는 상징이 들어 있기에 소별왕, 대별왕 같은 인물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소별왕은 이승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그는 세상을 정의롭고 공정하게 다스리지 못해 이승에는 아직도 살인자, 도둑, 싸움꾼, 사기꾼이 많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별왕이 정의와 공정으로 저승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이 신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하지 못하고 정의와 공정이 무너진 곳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그나마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와 공정으로 대한다고 하니 위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