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옷날 부채 선물, 더위 이겨내라는 의미

단오선, 악귀 물리치는 액막이 기능도 

부채, 회화ㆍ서예ㆍ공예 어우러진 복합예술

우리 선조들은 본격적으로 더운 여름을 맞이하기 전, 더위를 잘 이겨내고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부채를 선물하곤 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7.02.
우리 선조들은 본격적으로 더운 여름을 맞이하기 전, 더위를 잘 이겨내고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부채를 선물하곤 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7.02.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1983년 발표된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그렇다. 우리나라는 분명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라는 뚜렷한 사계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사계절은 있지만 봄과 가을 두 계절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만 같다. 애매한 두 계절과 뚜렷한 두 계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여름도 평년보다 더워 폭염이 예상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땀이 나는 것만 같다. 한편 우리 선조들은 본격적으로 더운 여름을 맞이하기 전, 더위를 잘 이겨내고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선물하곤 했다. 바로 부채다.

단오선은 부채살에 종이 또는 깁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를 말한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5.07.02.
단오선은 부채살에 종이 또는 깁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를 말한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소장)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천지일보 2025.07.02.

◆ 부채를 선물하는 날, 단오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 있다. 바로 ‘수릿날’ ‘중오절’ ‘천중절’이라 불리는 단옷날이다. 단오의 단(端)은 처음 곧 첫 번째, 오(午)자는 오(五) 즉 다섯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초닷새라는 뜻이다. 이날은 일 년 중 태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이라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단오에는 악귀를 물리치고 건강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속이 전해 내려온다.

그중 하나가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다. 또한 단오는 여름을 알리는 절기이도 하다. 단옷날 부채를 선물하는 것은 더운 여름을 잘 이겨내라는 의미와 함께 악귀를 물리쳐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동시에 담겨있는 것이다.

단오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중국 초나라의 충신이었던 ‘굴원’을 기리는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굴원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으로 부패한 왕권에 반대하다 유배돼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해 멱락수에 몸을 던졌는데 그날이 5월 5일이었다. 이후 그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들이 매년 5월 5일 배를 띄워 그의 영혼을 위로하던 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됐다는 것이다.

부채를 단오에 선물하는 전통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뚜렷하게 나타난다.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 등 세시 풍속을 기록한 문헌에 따르면 조선의 궁중과 민간에서는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관행이 있었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단오선(端午扇)’이라 불리는 부채를 하사했고 양반가에서는 학문과 격식을 중시하는 이에게 고급 부채를 선물해 예를 표했다.

부채는 그 자체로 여름을 상징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시문과 그림을 얹어 보내는 문화적 매개체였다.

특히 단오에는 부적처럼 사용된 상징이나 해충을 쫓는 의미를 담은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는 부채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액막이 선물’로서의 기능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부채 선물에는 마음을 식혀주고 여름을 무사히 보내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차가운 바람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더위를 이기게 해주는 정(情)’의 상징이 됐고, 때로는 은근한 감정 표현의 매개가 되기도 했다. 옛 시문에서는 연인이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전하거나 이별의 정을 담는 정서적 도구로도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단오를 맞아 전통 부채를 만들어 선물하거나 단오장을 열어 체험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선비들이 부채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교류의 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다. 부채 하나가 곧 시첩이자 화첩이었던 셈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7.02.
조선 시대에는 양반과 선비들이 부채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교류의 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다. 부채 하나가 곧 시첩이자 화첩이었던 셈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5.07.02.

◆ 예술과 실용, 사랑을 전하다

그 옛날 주고받던 단오선은 단지 무더위를 식히는 용도를 넘어 한국인의 멋과 정신을 오롯이 담은 예술품이자 문화유산으로도 주목받는다. 전통 부채는 단순한 기능적 물건을 넘어 회화, 서예, 공예가 어우러진 복합 예술이다.

전통 부채는 크게 ‘접는 부채(접선)’와 ‘펴는 부채(단선, 방선 등)’로 나뉜다. 대나무와 한지, 비단 등으로 만들어진 부채는 기능성을 넘어 예술품이자 신분의 상징이었다.

부채의 명칭도 다채롭다. ‘선자(扇子)’는 가장 보편적인 명칭이며,둥글게 펼쳐지는 ‘단선(團扇)’, 네모에 가까운 ‘방선(方扇)’, 휴대가 용이한 ‘접선(摺扇)’ 등 형태에 따라 나뉜다. 지역 명칭을 붙인 ‘담양부채’ ‘안동부채’는 그 고유한 제작 기법과 지역의 정취를 담아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고대 문헌에 따르면 부채는 삼국시대부터 궁중과 사찰에서 사용됐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그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특히 양반과 선비들이 부채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교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부채 하나가 곧 시첩이자 화첩이었던 셈이다.

또한 부채는 사랑의 매개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남녀가 정을 나누는 상징으로 부채를 주고받았다. 시 한 수를 담은 부채는 고백보다 더 깊은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었다.

이외에도 부채는 무속과 종교 의례, 탈춤과 국악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굿에서는 신을 모시는 도구로 방울 부채나 화선이 사용됐으며, 봉산탈춤 속 노장 캐릭터는 부채를 손에 들고 등장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현대에 들어 전통 부채의 명맥은 소수의 장인들이 잇고 있다.

한 장의 얇은 종이 위에 써내려간 시와 한 폭의 그림, 그 위에 가느다란 대나무가 얹혀져 만들어진 부채. 한 번의 손짓에 ‘촤르륵~’ 바람 소리를 내며 펼쳐지는 단오선. 더위를 식히기 위해 펼쳐든 작은 부채 안에 흐르는 것은 단순한 바람을 넘어 사람 사는 정(情)이자, 사랑이자, 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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