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이용률 7년 만에 ‘반토막’
韓 현금사용도 40개국 중 29위
‘현금 없는 사회’ 전망도 제기
한은 “현금 절대 없애지 않아”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지갑 속 지폐와 동전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인의 현금 결제 비중이 10%대로 급감하며, 실물화폐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신용카드와 간편결제, 모바일 카드 등의 비현금 지급수단이 일상에 빠르게 정착한 가운데 디지털화폐 실험과 스테이블코인 확산까지 맞물리며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지급수단·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의 전체 결제 중 현금이 차지한 비중은 15.9%로, 2013년 41.3%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7년 만에 20%p 이상 줄어든 수치다.
신용카드(46.2%)와 체크카드(16.4%)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으며, 모바일 카드(12.9%)도 현금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계좌이체(3.7%)와 선불충전금(2.7%)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10년 전만 해도 10번 중 4번은 현금을 썼지만, 이제는 1~2번 정도에 그치는 셈이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체크카드, 30~50대는 신용카드, 60대 이상은 현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고령층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거나 신용카드 발급에 제약이 있어 현금 사용 비중이 높았다. 지갑에 넣고 다니는 현금도 평균 6만 6천원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3년 전보다 7천원 증가한 수치다. 연령별로는 50대(9만 1천원)와 60대 이상(7만 7천원)의 보유액이 높았고, 20대(2만 7천원)가 가장 적었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현금 사용 비중은 낮은 편이다. 한은이 인용한 ‘월드페이’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현금 사용도는 10%로 40개국 중 29위에 해당한다. 일본(41%), 독일(36%), 스페인(38%) 등 유럽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북유럽 및 영연방 국가들처럼 디지털 결제가 일상화된 나라에 가까워졌다.
한국의 1인당 GDP는 현금 고사용국과 유사하지만, 디지털 기술 경쟁력과 정부 정책은 현금 저사용국에 가깝다. 특히 정부의 카드 활성화 정책, 신용카드 결제 거절 금지 조항 등 제도적 요인이 현금 감소를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현금 없는 사회는 이미 일부 현실화되고 있다. 무인 키오스크와 현금 없는 버스, 현금 결제가 불가능한 매장이 전국적으로 늘고 있으며,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도 2020년 8만7천여대에서 2023년 8만대 이하로 감소했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 시장까지 급속히 커지면서 실물화폐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해졌다. 달러 연동 코인인 테더(USDT)는 이미 해외 송금과 가상자산 거래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엔 비자카드로 오프라인 결제가 가능한 스테이블코인 기반 카드도 등장했다.
한국은행 역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예금 토큰 실험을 본격화하며 디지털화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실물화폐의 ‘퇴장’ 가능성에 선을 긋는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전력이나 통신 장애,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실물화폐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은은 실물화폐 발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화폐에 대한 신뢰 역시 언제든 실물화폐로 교환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서 가능하다”며 “화폐 시스템의 근간은 결국 실물화폐에서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ATM 감소와 현금 수납 거부 매장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화폐유통시스템 협의회를 확대 개편하고, 현금 수용성·접근성 조사, 해외 사례 분석 등을 통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의 현금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ATM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관련 기관과 협력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