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재집권 100일 평가
‘대공황’ 루스벨트 능가 속도
美와 세계에 거센 변화 불러
국경 폐쇄·동맹 이탈·관세 전쟁
취임 100일 앞 지지율 하락세
향후 ‘무역 협정·평화 협상’ 집중
[천지일보=이솜 기자] “변화의 물결이 나라를 휩쓸고 있다.”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한 선언이다. 취임 100일(29일)을 맞은 지금 그의 발언은 명백한 현실이 됐다.
세계 경제 구조부터 플라스틱 빨대 사용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는 이미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로 미국에서 새 대통령이 이렇게 많은 변화를, 이렇게 빠르게 추진한 적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첫 100일 동안의 정책 변화는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이겼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음에도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숨 가쁜 속도로 움직였다. 그는 이미 139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이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4년간 서명한 수치에 근접한다. 그는 미국 경제의 작동 방식, 세계 외교 관행, 이민 집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또한 연방 관료제를 허물고 재구성하려 했으며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밀어붙이고 사법부와의 전쟁을 벌였다.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일부 정책은 부정적 평가를 받으며 역사상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몇십 년간 드물게 볼 수 있는 주식 시장 하락을 초래했으며 경제학자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 언론, 공중 보건, 문화 분야에도 직접 개입해 이를 자신의 의지에 따르게 하려 했으며 일부 분야에서는 놀랄 만큼 성공을 거뒀다.
물론 일부 계획은 진전이 있었지만 많은 약속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 집계에 따르면 31개 핵심 공약 중 8개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고 5개는 심각한 장애물에 부딪혔다.

◆관세 추진에 시장 롤러코스터
경제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고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정책은 무역과 관세다.
그는 지난 2일 거의 모든 미국 수입품에 10%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90개국의 수입품에 추가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에 대한 방침을 뒤집고 이 계획을 90일 동안 중단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관세를 145%로 인상했다.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관세 발표와 함께 급락했다가 90일 연기 소식에 급등했고 글로벌 무역전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헤드라인에 따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다. 시장 지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악의 하락세를 보였고 채권 시장은 역사적인 패닉에 빠졌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이 결국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지난 3개월 동안 소비자 신뢰는 급락했고 주식 시장은 요동쳤으며 투자자들은 정책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약속했던 번영의 황금기가 불안의 시대로 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공약했던 정부의 ‘낭비, 사기, 부패’ 척결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이를 위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머스크는 정부 효율성 부서를 설계했으며 이는 트럼프 취임 100일 중 가장 논쟁적이고 영향력 있는 조치 중 하나가 됐다.
◆단속 강화에 불법 입국 감소
불법 이민 단속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핵심 공약이었다. 또한 이는 그가 가장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얻는 분야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강경한 이민 정책들을 시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98년 제정된 ‘외국인 적대법’을 근거로 최소한의 사법 절차만 거친 뒤 이민자들을 추방했으며 법원 명령을 무시하고 베네수엘라 갱단 추정 수백명을 엘살바도르 메가 감옥으로 송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동시에 500만 달러를 지불하면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골드 카드’ 제도를 제안했다.
바이든 전 행정부 퇴임 이후 미국 남부 국경을 통과하는 이민자 수는 급감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 2월 기준 약 8450명으로 최소 2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약속했던 대규모 추방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속도 강화 노력에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추방 건수는 소폭 감소했다.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인 작년 2월에는 1만 2000명 이상이 추방됐으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 2월에는 이 수가 약 1만 1000명으로 감소했다.
국경을 통한 불법 입국은 급감했다. 지난달 미국 국경세관국(CBP)은 전국에서 불법 월경자 7181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2월 대비 14%, 2024년 3월 대비 95% 감소한 수치다.
AP-NORC 공공문제연구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46%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칼 갈았던 트럼프, 보복 시작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지지자들에게 약속했던 ‘보복’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거의 매주,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들과 이들을 고용했던 로펌들을 정조준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한 자신을 비판하거나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고 인정한 전직 관리들도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일부 미국 최고 로펌을 겨냥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들은 과거 트럼프 관련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을 고용했다는 이유로 변호사들의 출입증 박탈, 연방 청사 출입 금지, 연방 계약 해지 등의 제재를 받았다.
몇몇 로펌은 소송을 통해 일부 조항의 집행을 중단시켰지만 다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해 수억 달러 상당의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 주요 대학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해 콜롬비아대학에 대한 4억 달러 규모 연구지원금을 철회했다. 콜롬비아대학은 트럼프 정부 측 요구에 따른 변화를 수용했다. 하버드대학은 9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지원금을 포기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행정부는 하버드대학의 세금 면제 지위를 조사하고, 보조금을 동결했다.
◆변한 미국에 동맹들도 각자 대비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안정과 안보를 지탱해온 국제 질서를 거부했다.
그는 자국의 손해를 이유로 오랜 동맹을 부정하고 유럽 주둔 미군 감축을 시사했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오랜 동맹국들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전쟁의 신속한 종식을 약속했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없다.
그는 다른 나라 지도자를 초청하는 자리에서도 기존 외교 관례를 깨뜨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꾸짖었으며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했다는 잘못된 주장을 반복했다. 실제로 전쟁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발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국무부의 인력과 프로그램을 대폭 삭감할 것을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파리 기후협약 이탈,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재 등 주요 국제기구 탈퇴 조치를 즉각 단행했다.
또한 미국의 대표적 대외 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쇄했다. 이 기관은 부패 문제가 있었지만, 인도주의적 지원과 국제적 신뢰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덴마크령) 병합, 파나마 운하 재탈환,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는 방안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른 여파는 이미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로 인해 미국 동맹국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재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유럽 동맹국들은 미국 무기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방위 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미국과의 역사적 우호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캐나다는 유럽과의 경제 및 안보 관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악화된 양국 관계로 인해 미국 파트너국들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는 추측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약세가 트럼프에게 이득
대개 대통령들은 취임 직후 ‘허니문 기간’ 동안 대중의 우호적 시선을 얻는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시점에 57%의 국정 수행 지지율을 기록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65%,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62%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당시 41%로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넘는 대통령이었다.
두 번째 임기, 취임 100일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7일 공개된 세 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세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9%에서 45% 사이를 기록했으며 미국 ABC에 따르면 이는 지난 80년 동안 취임 100일을 맞은 신임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워싱턴포스트-ABC-입소스 여론조사는 미국 성인 중 39%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 평가했다고 밝혔다. CNN/SSRS 여론조사는 41%, NBC뉴스 Stay Tuned 여론조사는 45%가 지지한다고 나타났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백악관에 복귀했을 당시 지지율이 상승했던 것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정당별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의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대다수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지난 23일 친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반적인 지지율은 44%로 8년 전 그의 100일 지지율 45%와 비교해도 1%p 낮았다.
국경 안보 부문에서는 55%의 지지율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유권자의 약 59%가 국가 상황에 불만족스러워하고 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선거 공약을 잘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SSRS가 지난 17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성인 167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및 전화 인터뷰를 병행한 CNN 여론조사에서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8%는 그가 공약을 잘 지키고 있다고 답했고, 51%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는 그의 첫 임기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국가의 주요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 의회 내 민주당보다 신뢰도가 높다. 워싱턴포스트-ABC-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가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의회 내 민주당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37% 대 30%). 또한 양당 모두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듯, 30%는 “어느 정당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60%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사와 동떨어져 있다”고 평가했지만 민주당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많은 69%가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고 응답했다. 공화당 전체에 대해서도 64%가 같은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 취임 100일 자화자찬 연설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이번 주 취임 100일 동안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향후 100일 동안은 무역 협정과 평화 협상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은 27일(현지시간) 백악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더 힐에 따르면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미시간주 워런의 매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100일 기념 연설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국경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규모 추방 작전을 개시했으며 외국인 적대법을 발동한 사실을 부각할 예정이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민간 부문의 투자를 통해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유치했으며 그가 국가별 고율 관세를 90일 동안 유예한 이후 130개국 이상이 백악관에 무역 협상을 타진해왔다고 설명할 계획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재임 기간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물가가 하락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로이터에 “앞으로도 물속에 숨겨진 많은 어뢰들이 있다”고 예고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 특징적이었던 행정명령을 통한 조치들이 눈덩이처럼 계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관계자는 현재 다수 국가 국민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 및 정부 관료제와의 전쟁을 이어가겠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향후 100일에는 무역 협정과 평화 협상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를 순방하며 해외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