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예비비 두고 신경전 벌여
與 “목적예비비 6천억원 불과”
野 “산불 대책 예산만 증엑”
2분기 경제 전망 ‘먹구름’ 짙어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경북 북부와 경남 산청 등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 사태’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론에 재시동이 걸렸다. 그러나 예비비를 두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치하면서 현실화하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일각에선 무성한 논의만 남긴 채 흐지부지된 ‘벚꽃 추경론’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30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전국적인 산불을 기점으로 적극적인 예산 투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국가적 재난이 추경론의 엔진을 되살리는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여야 역시 추경을 두고 곧 머리를 맞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추경의 범위다. 현재 여야는 ‘에비비 추경’을 두고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올해 예비비는 2조 4천억원으로,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4조 8천억원의 절반으로 깎였다.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 ‘감액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결과다.
이 중 용처에 제한이 없는 일반예비비(8천억원)를 제외하고, 재해재난 등을 위한 목적예비비는 올해 1조 6천억원 규모다. 일종의 ‘정부 외상비’에 해당하는 ‘국고채무부담행위’도 1조5천억원에 달한다.
별도로 행정안전부(3600억원), 산림청(1천억원) 등 부처별로 9270억원의 재해재난대책비가 편성돼 있다. 재해재난 지원은 통상적으로 2개 연도에 걸쳐 집행된다. 가령, 지난해 기록적 호우에 따른 피해복구비가 올해 예산에도 책정된 구조여서 가용재원은 재산출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재난·재해 등에 활용이 가능한 목적예비비가 1조 6천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중 1조 2천억원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고교 무상 교육 등 사업 소요 경비로 지출하도록 확정돼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목적 예비비는 약 4천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각 부처 재난재해비는 9270억원이지만, 이 중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1998억원에 그친다고 밝혔다. 9270억원 중 4170억원은 지난해 발생한 재해에 대한 복구비인 만큼, 올해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은 5100억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의 1850억원 규모의 예산 역시 가뭄, 태풍에 사용하게 돼 있어 산불 등 재난엔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결국 즉시 가용할 수 있는 목적 예비비와 각 부처 재난재해비를 합쳐 ‘즉시 가용 가능한 재난 대응 예산’은 약 6천억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채무 부담 예산으로 책정된 1조 5천억원도 시설 복구 등에만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고, 사실상 ‘외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불 피해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현재의 예비비를 우선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부처별로 흩어져있는 9200억원의 재해재난대책비를 우선 활용하고, 예비비가 아닌 직접적인 ‘산불 대책’ 예산을 증액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민의힘이 삭감된 예산안 때문에 산불 대책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현재 산불 대책에 사용할 국가 예비비는 총 4조 8700억원이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세부적인 사안을 두고 여야 간 입장차가 있긴 하지만 추경 편성이 성사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산불 피해가 심각한 만큼 재난 관련 추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은 여야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야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선 추경안을 제출하더라도 국회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수정되거나 아예 통과가 불가능한 정치 지형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난항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산불과 정치적 불확실성, 미국발(發) 상호관세로 우리나라 경제에 먹구름이 짙게 깔릴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 대비 0.6%, 서비스업생산지수는 0.8% 감소했다. 지난 3월 소비자심리지수도 3개월 만에 1.8p 하락하며 올해 1월(91.2)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더해 다음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와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등을 예고하면서 2분기 전망도 어두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은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최근 관세 대상으로 지목되는 자동차와 반도체 등은 대미수출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관세부과에 따른 영향이 클 수 있다”며 “글로벌 교역둔화에 따른 여타국 수출 감소, 통상환경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 공급망 재편에 따른 생산차질 등 간접적 효과도 국내 성장에 상당한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