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크라 ‘30일 휴전안’ 제안
러시아, 신중 태도·강경론 펼쳐
젤렌스키, 평화협정 확대 시사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30일 휴전안’을 두고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즉답을 피하고 있다. 복잡한 셈법을 두고 푸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30일간의 일시 휴전을 골자로 한 방안에 합의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공은 러시아로 넘어갔다”며 휴전안에 대한 러시아의 수용을 촉구했다. 그는 12일 아일랜드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러시아의 반응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모든 적대행위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예스(yes)’라고 답하면 평화를 위한 실제 진전을 의미하지만 ‘노(no)’라고 답하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루비오 장관은 러시아 측과의 직접 접촉 계획도 언급했다. “오늘(12일) 러시아 측과 접촉해 논의할 예정이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브 위트코프 백악관 중동특사가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는 휴전안에 대한 즉각적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미국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 반응을 밝힐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미국과의 접촉이 예정돼 있으며 구체적인 정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러시아의 입장은 해외가 아닌 러시아 내부에서 결정된다”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 정치권 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감지된다. 정의러시아당 세르게이 미로노프 대표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휴전이 성사될 경우 우크라이나가 전열을 재정비하고 서방에서 추가 지원을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렉세이 체파 러시아 하원 외교위원회 제1부위원장도 “쿠르스크주 영토를 완전히 탈환하기 전까지 휴전은 어렵다”며 강경론을 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제시한 조건과 이번 휴전안이 부합하는지도 러시아가 고려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포기, 점령지 철수 등을 조건으로 즉시 휴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일시적인 분쟁 동결이 아닌 완전한 종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도 휴전안 수용 여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러시아군은 쿠르스크주에서 반격에 성공했으며 전반적인 전황도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배경 속에 일시적 휴전이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다만 미국과의 관계 복원을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최근 “미국과 희토류 공동 개발을 준비할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경제 협력 의지를 내비치면서 휴전안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휴전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30일 휴전안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이 무기 지원과 정보 공유를 재개한 것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 휴전안이 향후 더 큰 평화협정 초안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덧붙이며 협상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이 미국·우크라이나 간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종전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이 파행으로 치달은 이후 양국 간 경색된 분위기를 일정 부분 회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