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군함 정비사업 급물살… 새 돌파구 열리나
美 해군, 비전투함 최대 10척까지 정비 위탁 추진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미국 정부가 한국에 미 해군 군함의 정비를 처음으로 공식 제안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한미 조선업 협력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사업으로 실현되는 첫 신호탄이다. 이번 제안으로 미국의 군함 정비 시장에 본격 진입한 한국 조선업계는 향후 미국과의 전략적 방산 협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6일 정부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미 해군부 관계자는 지난달 말 우리나라 방위사업청과 접촉해 국내 방산업체가 미군의 군함 정비(MRO)를 맡아줄 수 있는지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올해 정비가 시급한 비전투함 5~6척에 대한 정비 업무를 제안했으며, 사업의 진행 상황에 따라 최대 10척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해군이 정비를 요청한 함정은 해양조사선과 해양감시선 등 전투 기능이 없는 비전투함으로 알려졌다. 미 해군은 지난해 한국 방산업체가 월리 시라함 등 미군 함정을 성공적으로 정비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조선업체들의 기술력과 시설 능력에 대해 면밀히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수행한 정비 작업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기술력과 품질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번 미 해군의 정비 위탁 요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간 강조했던 한미 조선업 협력을 구체화하는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 조선업계의 고령화와 설비 노후화 등을 이유로 “군함 등 미국 주요 함정의 건조와 정비에 있어 한국과 협력이 절실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이 자국 내 조선소가 아닌 해외에 직접 함정의 정비 업무를 공식 위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미국 해군이 올해 최대 10척까지 국내 조선업체에 정비를 맡길 가능성을 밝힌 만큼 한미 양국 간 방산협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군의 군함 정비사업 규모는 연간 20조원에 달한다. 특히 이번 사업을 통해 신뢰가 구축되면 향후 미국이 추진하는 전투함 정비사업에도 진입할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비전투함에 비해 전투함은 정비 비용이 수 배 높아 국내 업체의 새로운 수익 창출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미군의 군함 정비사업을 성공적으로 수주할 경우 향후 신규 함정 건조사업에도 참여할 길이 열릴 수 있다. 미국 의회가 최근 군함을 해외에서도 건조할 수 있도록 법안을 발의하면서 이른바 ‘번스-톨리프슨법’으로 불가능했던 해외 군함 건조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현재 296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으나 오는 2054년까지 함정을 381척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함정 수 증가와 노후 함정 교체 수요로 인해 향후 30년 동안 매년 평균 43조원 규모의 신규 군함 발주가 예상된다.
한편 국내 방산업체 중 한화그룹은 이미 한미 방산 협력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화는 지난해 미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미국 조선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고, 미 해군 군함 MRO 사업 수주에도 성공했다. 한화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공화당과의 관계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오는 26일 주주총회를 열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에드윈 퓰너 미국 해리티지재단 회장의 사외이사 임기를 2년 더 연장할 예정이다. 퓰너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1기 행정부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는 40년 가까이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또 한화오션은 지난해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면서 미국 조선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미 해군 군함 MRO 사업도 성공적으로 수주했다. 미군의 요청에 따라 한화는 올해 최대 6척의 군함 정비를 목표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미 조선업 협력은 해군 군함뿐 아니라 공군 전투기 정비사업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우리 정부는 미 공군에 F-16 전투기의 MRO를 한국에서 수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미 공군성 등이 이 제안을 검토 중이며, 성사될 경우 전투기 정비 및 유지보수 등 고도의 기술력과 보안이 요구되는 분야까지 국내 방산업체가 진출할 수 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