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유영선·홍보영·홍수영 기자] ‘푸른 용의 해’라고 불린 갑진년(甲辰年)이 저물고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乙巳年)이 다가왔다. 극한 기후로 인한 재난부터 의과대학 정원 확대 논쟁까지, 올해도 굵직한 이슈들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서울 시청역 참사와 대형 화재 사건은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디지털 기술 발전의 어두운 단면인 딥페이크 성범죄가 심각성을 더하며 경각심을 키웠다. 정치인을 겨눈 흉기 피습 사건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을 보여줬다. 특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한국 문학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면서 독서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돌아보며, 본지는 갑진년을 뜨겁게 달군 7대 이슈를 선정했다.

한반도 기후 변화가 심각해 지면서 폭염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증가했다.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8월 11일 서울 중구 N서울타워가 붉게 보이고 있다(왼쪽). 폭우가 쏟아진 9월 21일 오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일대가 물에 잠겨 고립된 주민 2명을 소방 당국이 구조하고 있다.
한반도 기후 변화가 심각해 지면서 폭염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증가했다.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8월 11일 서울 중구 N서울타워가 붉게 보이고 있다(왼쪽). 폭우가 쏟아진 9월 21일 오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일대가 물에 잠겨 고립된 주민 2명을 소방 당국이 구조하고 있다.

◆기후위기

올해 한반도는 기후위기의 극단적 기상현상을 경험하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한 한 해였다. 연초부터 이어진 이상고온으로 1월과 2월 평균기온이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여름철에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돼 온열질환자 3704명, 사망자 34명이라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피해를 냈다. 장마철에는 전국 평균 474.8㎜의 비가 내렸고, 특히 1시간 동안 100㎜ 이상의 집중호우가 9차례나 발생했다. 7월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간 경기 파주시에는 634.5㎜의 폭우가 쏟아졌다.

11월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설이 발생했다. 서울에 28.6㎝, 수원에 43.0㎝의 눈이 쌓여 역대급 ‘가을 폭설’로 기록됐다1. 이는 예년보다 2~3도 높은 서해 수온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기상학계는 이 같은 극단적 기상현상이 기후변화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30년간 한국의 평균기온은 1940년대에 비해 1.6도 상승했으며, 대기 중 수증기량 증가로 인해 폭우와 폭설의 빈도와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히 날씨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일상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극단적 기상현상이 앞으로도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측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역주행한 승용차로 인해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5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사고현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꽃과 술 등이 놓여 있다.ⓒ천지일보 2024.07.0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역주행한 승용차로 인해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5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사고현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꽃과 술 등이 놓여 있다.ⓒ천지일보 2024.07.05.

◆도심 한복판 역주행 사고, 13명의 사상자 낳다

지난 7월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로 보행자 9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퇴근 후 귀가하던 시민들이 몰린 시간대였던 만큼 도심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는 더욱 큰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60대 운전자 차모(68)씨가 몰던 제네시스 차량은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와 약 200m를 역주행하며 차량 두 대를 들이받고 인도로 돌진했다.

운전자 차씨는 급발진을 주장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고령 운전자 자격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논란은 나이 든 운전자에 대한 인신공격으로까지 확산됐다.

또한 사고 현장에 설치된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는 무단횡단 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차량 충돌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보행자 안전시설의 부실함도 지적됐다.

서울시는 사고를 계기로 대대적인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급경사나 급커브 등 사고 위험이 높은 98곳에 차량 충돌을 견딜 수 있는 ‘SB1’ 등급의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고, 인파가 몰리는 공간에는 차량 진입을 막는 대형 석재화분과 볼라드를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이번 참사는 도심 보행자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4일 오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단 일차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6.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4일 오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단 일차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6.24.

◆아리셀 공장 화재로 23명 사망… 산업계 경종

6월 24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리튬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산업계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사고는 리튬 배터리 1개의 폭발로 시작됐으며, 열폭주로 인해 다른 배터리들이 연쇄 폭발하면서 공장 내부로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다.

근로자들이 분말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리튬배터리 화재는 열을 빠르게 낮출 수 있는 D급 소화기가 필요했다. 공장에 비치된 일반 소화기로는 대응할 수 없어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화재가 발생한 지 단 42초 만에 공장 내부는 연기로 뒤덮였고, 빠져나오지 못한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번 사고는 리튬배터리를 다루는 산업현장의 화재 대응 체계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아리셀 공장은 위험성이 높은 리튬배터리를 취급함에도 소방당국의 화재안전 중점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공장 3동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에서도 빠져있어 화재 확산을 막지 못했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리튬배터리 취급 공장을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하고, 매년 화재안전조사를 받도록 조치를 강화했다. 또 리튬 등 금수성 물질 화재에 적합한 소화기와 소화약제 개발을 추진하며, 금속화재용 소화기 시험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아울러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 확대와 화재 발생 시 초기 대응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공의 사태로 인한 응급실 의료 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지난달 8일 서울 시내 한 응급의료센터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게시돼있다. (출처: 뉴시스)
전공의 사태로 인한 응급실 의료 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지난달 8일 서울 시내 한 응급의료센터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게시돼있다. (출처: 뉴시스)

◆의대 증원 갈등, 의료 대란으로 확산

올해 2월, 정부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25학년도부터 5년간 의대 정원을 증원해 2031년부터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추가 배출할 계획이었다. 필수의료 위기와 의사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된 이 정책은 27년 만에 이루어진 대규모 증원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전공의들은 집단 사직을 선언했고, 의대생들도 대규모로 휴학을 진행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진료와 수술이 중단되고, 병원들은 평소의 절반 수준의 병상 가동률을 기록했다. 암 환자들의 수술이 연기되는 등 환자들의 피해가 속출했으며, 응급실 뺑뺑이 현상도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일정을 계속 진행했다. 정부는 각 대학의 교육 여건에 맞춰 2025학년도에는 1509명의 증원을 확정했고, 의료계는 여전히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며 갈등이 지속됐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병원과 학교로 복귀하지 않았으며,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대치 상황이 계속됐다.

이 갈등은 의료 시스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내년부터 신규 의사와 전문의 배출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내년 초에 있을 전문의 시험에 접수한 전공의 규모는 올해의 20% 수준에 불과하고, 의대 졸업생들이 치르는 의사 국시 지원율도 11%에 그쳤다. 장기화된 의정 갈등은 한국 의료 시스템에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스톡홀름=연합뉴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2024.12.11
(스톡홀름=연합뉴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2024.12.11

◆한강, 한국인-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영예

작가 한강(54)이 한국인이자 아시아 여성으론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의 대표작이 군부 독재정권의 비상계엄 상황 속에서 이뤄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스웨덴 한림원은 “자신이 성장한 광주에서 1980년 한국군에 의해 수백명의 학생과 비무장 민간인이 학살당한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며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 책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통해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한다”고 평가했다.

한강은 지난 6일 수상을 위해 찾은 스웨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12월 10일 열린 시상식과 기념 연회는 시름을 잊게 할 만큼 화려하게 진행됐다. 연회에선 사회자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돼 영광입니다”라며 한국어로 한강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올해 최고의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한강의 수상 소식은 전국적 독서 열풍으로도 이어졌다. 교보문고 등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한강의 작품으로 가득 찼고, 수상 발표 직후였던 10월 10일 이후 엿새 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진기록을 낳기도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 소속 대학생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청년대학생 1108인 기자회견’에서 대학 내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 및 대응 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10.1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 소속 대학생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청년대학생 1108인 기자회견’에서 대학 내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 및 대응 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10.18.

◆지인이 내 사진을?… 일상 파괴한 딥페이크

사람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이른바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전방위적으로 유포되고, 그 대상이 다름 아닌 평범한 지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특히 ‘서울대 딥페이크(서울대 N번방)’ 사건은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서울대 출신 박모씨 등은 지난 2021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대 동문 등 여성 61명의 피해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 등으로 2000여개의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채팅방 등에 뿌리고, 사진을 피해자에게도 줘 모욕을 준 혐의를 받는다.

이 같은 딥페이크 피해는 유독 한국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발표한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이트 10곳의 영상 9만 5820건을 분석한 결과 전 세계에 유포된 딥페이크 음란 합성물 피해자 중 53%가 한국인이었다. 그중 대부분은 K팝 가수였다.

국회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등 허위 영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반포할 목적’이 없더라도 제작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했다. 정부도 지난 10일 해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처벌뿐만 아니라 교육도 절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10대 남학생 등이 딥페이크 기술에 쉽게 접하는 상황에서 일찌감치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25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행인으로부터 머리를 가격당했다. 사진은 배현진 의원 피습관련 CCTV 화면. (제공: 배현진 의원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25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행인으로부터 머리를 가격당했다. 사진은 배현진 의원 피습관련 CCTV 화면. (제공: 배현진 의원실)

◆이재명·배현진 등 정치인 피습… 폭력적 사회의 한 단면

정치인들의 잇따른 피습은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모습이 표출된 극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올해 초 1월 2일 부산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김모(66)씨의 흉기에 왼쪽 목 부위를 공격받아 부산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응급 치료 뒤 같은 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수술도 받았다.

부산지검 특별수사팀은 “칼이 조금만 더 깊이 또는 중심부로 들어갔다면 경동맥이 손상돼 사망 가능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김씨가 혼자 생활하면서 극단적 정치 성향을 갖게 된 것이 범행 동기라고 판단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이 같은 범행의 피해자가 됐다. 3주가량이 지난 같은 달 25일 배 의원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에서 돌덩이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가해자 A군은 불과 15세의 중학생이었다. 이 일로 배 의원은 두피를 1㎝ 봉합해야 했다.

A군은 심신미약 등을 주장했으나, 검찰은 일축했다. 검찰은 A군이 관심받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정치인들조차 안전하지 않은 게 한국 사회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한국의 치안을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는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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