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로 사상 첫 ‘대세 전환’
보증금 반환 공포 확산 여파
국토부, 장기 임대 제도 추진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빌라 밀집지역 모습. (출처: 뉴시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빌라 밀집지역 모습.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서울과 경기지역 빌라(연립·다세대)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이 겹치며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전세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빌라 시장의 월세화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1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신고된 연립·다세대 전월세 거래 12만 7111건 중 월세 거래는 6만 8116건으로 전체의 53.6%를 차지했다. 이는 국토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11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2020년 서울의 빌라 월세 비중이 29.5%였던 것과 비교하면 24%p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 월세 비중(41.6%)보다도 12%p 높아 빌라 시장에서 월세 전환이 두드러졌다.

경기도에서도 빌라 월세화 현상이 뚜렷하다. 올해 경기도 연립·다세대 전월세 거래 6만 3520건 중 월세 거래는 3만 2760건으로 51.6%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0년 30.6%에서 20%p 이상 상승한 수치다. 서울과 경기지역 모두에서 빌라 월세 비중이 전세를 넘어선 것은 전세사기와 전셋값 하락, 역전세난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전세사기 피해는 빌라 시장에서 ‘전세 포비아(공포증)’를 확산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021년 전셋값 급등과 함께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던 시기에는 전세 선호도가 높았으나, 이후 금리 인상과 전셋값 하락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시장 분위기가 급변했다. 임대인은 보증금 반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있으며, 임차인 역시 안정성을 이유로 월세를 선택하고 있다.

서울의 한 임대사업자는 “과거에는 빌라도 전세로 계약하려는 임차인이 많았지만, 전세사기 문제가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며 “보증금 2000만원 이상의 전세 계약은 줄어들고, 월세로 돌리거나 아파트로 옮기는 추세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세 기피 현상은 월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연립·다세대 월세 가격지수는 지난 10월 기준 102.0으로 2021년 6월 기준(100)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도 월세 가격지수 역시 올해 10월 101.9로 상승했다. 예를 들어 수원의 한 대학가 빌라 원룸은 2021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이었지만, 현재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33% 이상 올랐다.

전세사기 여파는 국내 임대시장에 외국계 자본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사들이 국내 주거용 건물을 매입하며 임대시장에 재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최장 20년간 안정적인 임대 공급을 보장하는 기업형 장기 임대 제도를 도입하고, 임대사업자 지원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월세화 현상이 빌라 시장에서 새로운 표준(뉴노멀)으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하며,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을 지키려는 임차인이 월세를 선택하면서 빌라 시장은 사실상 월세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며 “주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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