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이재빈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의 재집권에 대해 ‘글로벌 거시충격(Macro Shock)’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2기가 세계 거시경제 전반에 폭넓은 충격파를 가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경제적으로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은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 견제, 관세장벽 등 트럼프가 후보 시절 내세운 굵직한 공약들이 추진될 전망인 가운데 한국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트럼프 2기가 시작하는 시점은 윤석열 정부의 후반기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전반기 주요 이슈들이 물가, 가계부채, 내수와 같은 국내 문제들이었다면, 후반기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라 대외 환경에서의 한국 수출 경쟁력 유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주요 경제정책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관세장벽 강화와 기업 친화적 감세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정면 겨냥하고, 국내적으로는 쇠락한 ‘러스트 벨트(rust belt, 오대호 인근 침체된 공업지대)’ 부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트럼프는 중국 제품에 60% 이상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중국은 한국 최대 교역국 중 한 곳으로, 미-중 간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한국에 불똥이 튀는 건 불가피하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등 국내 핵심 산업계도 긴장 상태다. 트럼프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부정적이다. 이에 따라 칩스법의 일부 조항을 폐기하거나 축소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점쳐지는데, 반도체 산업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는 셈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역시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 축소 가능성이 큰 상황으로, 전기차를 포함해 완성차의 대미(對美)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자동차 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입품에 대한 공격적인 관세부과도 트럼프의 대표적인 공약으로, 국가 관계없이 전 세계 수입품을 대상으로 보편관세를 10~20%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편관세가 부과되면 제품의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고,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 가능성도 작아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미국의 중국 견제 강화를 대비해 한국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과세 조치에 중국이 보복 조치로 대응하는 경우, 한국의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 중국 시장 접근성에 제한이 걸리는 등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 미국이 러스트 벨트 재활성화를 구상하는 만큼 이에 맞춰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보편관세 부과, 칩스법·IRA 축소 등 사안의 경우 한국은 협상을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의 사업가적 면모를 고려한 부분도 있지만 ‘트럼프 1기’를 떠올리면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는 많은 예외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에 기인한다.
해당 시기 한국이 ‘무역확장법 제232조(Section 232)’에서 예외를 받았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자국 내 철강 및 알루미늄 산업 보호 취지로 시행된 이 조항은 일부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철강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때 한국을 포함한 몇몇 동맹국은 제한적인 예외를 부여받아 철강 수출 중단은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미 공화당이 의회까지 장악하면서 트럼프 2기의 강경노선에 제동을 걸기 어려워졌지만, 노골적인 무역장벽은 미국에 역풍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어 전면적인 현실화는 사실상 어렵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지역경제 타격과 맞물려 관세장벽에 부정적인 시각이 나온다. 사실상 트럼프가 공약을 추진하는 데 있어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트럼프 측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를 해왔다. 이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공화당 빌 해거티 상원의원을 필두로 미국 공화당 상원·하원의원들과 소통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방한했을 땐 대통령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관건은 꾸준한 협상으로 트럼프노믹스의 실현 수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외교에서 협상은 당연한 일이지만, 트럼프 2기에서 그 중요성이 비약적으로 커진 건 부정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신흥 시장 개척, 기술 경쟁력 강화, 그리고 다변화된 공급망 구축 등을 통해 트럼프가 몰고 올 불확실성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