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719일만에 선고
상황관리관·112상황팀장 무죄
“인과관계 증명 어렵다 판단”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에서 피고인 중 경찰 최고위직인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참사 발생 719일 만에 나온 판결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권성수)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청장과 함께 기소된 류미진 당시 서울청 112상황관리관(총경), 정대경 전 112상황팀장(경정) 또한 같은 혐의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경찰의 대응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은 인정했으나, 법적으로는 피고인들의 과실이나 참사 확대와의 인과관계를 엄격히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혐의는 조직 전체가 아닌 피고인 개인의 형사 책임을 따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김 전 청장 등이 업무상 과실을 저질렀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이태원 참사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제출한 정보보고서나 문자 메시지 등을 종합할 때 대규모 인파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명확히 인지할 수 없었다고 봤다. 또한 김 전 청장이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관련 부서와 경찰서장들에게 지시를 내린 점을 들어, 그의 지시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참사 당일 김 전 청장이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사고 보고를 받은 직후 서울청 경비과장에게 가용 부대를 보내라고 지시한 점을 강조하며, 그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참사가 확대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또한 류 총경과 정 경정에 대해서도 각각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류 총경의 경우 112 상황실에 머물지 않아 지연 근무가 발생했지만, 해당 업무와 참사 확대 사이의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 경정에 대해서도 “112 신고 분류 코드 대응 방법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 추가 교양이 필요 없었다”며 업무 처리에 중대한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류 총경과 정 경정은 참사 당일 압사 관련 112 신고가 쏟아지는데도 뒤늦게 서울청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해 참사를 키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앞서 김 전 청장에게 금고 5년을, 류 총경과 정 경정에게는 각각 금고 3년, 금고 2년 6개월을 구형했으나,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김 전 청장은 2022년 10월 29일 참사 발생 당시 경찰력 배치와 관련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참사 피해를 키운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후 징계 처분을 받아 올해 6월 사직처리 됐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청장은 핼러윈 기간 동안 다수 인파가 몰릴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구체적인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의 지시가 충분하지는 않았으나, 당시 상황에서 범죄 예방과 같은 국가 기관의 재난 방지 기능에 대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을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을 지켜본 유족들은 경찰 고위 간부들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해 큰 실망감을 나타내며 고성을 지르고 항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