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트럼프 재임 중 공적행위는 면책”… 적용 범위가 포괄적
재임 중 행위에 포괄적 면책 부여, 권한 남용 악용 우려도 거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출처: AP, 연합뉴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출처: AP, 연합뉴스)

[천지일보=방은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9일 대선 이후로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 차원으로 제기한 ‘전직 대통령 면책 특권’ 전략이 통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전직 대통령 면책 특권’ 관련해 일부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정가에서는 ‘대통령 면책 특권’ 관련 논쟁이 뜨겁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 대법원은 지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행위는 퇴임 이후에도 형사기소 면제 대상”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일부 수용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이날 판사들의 6대 3 평결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헌법적 권한에 따른 행위’에 대해 기소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대통령의 기소 면제를 처음으로 일부 인정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된 여러 범죄 사실 중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법무부 당국자들과 논의한 내용은 ‘절대적 면책’ 대상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 “우리는 권력 분립의 헌법 구조 하에서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행한 공식 행위에 대해 형사 기소로부터 어느 정도 면책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썼다. 이어 “전직 대통령의 면책은 ‘핵심 헌법적 권한’과 관련해 ‘절대적 면책’에 해당하며, 그 외 ‘공적 행위’는 면제받는 것으로 ‘추정’되며, ‘사적 행위’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또 대법원은 그 외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에 대해서는 하급심 법원에 면책 특권 적용 여부 판단을 넘긴다는 결정도 내렸다.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에게 대선 결과 인증을 거부할 것을 압박한 혐의, 1·6 사태 관련 행동 등에 대해서 ‘추정적 면책’이라고 판결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면책권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하급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말해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대법원의 결정으로 인해 11월 5일 미국 대선 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판 받을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급심 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을 ‘면책 특권’ 적용에 있어 어떻게 판단할지를 결정하는데 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면책이 인정되는 ‘공적 행동’의 범위가 포괄적이기에 대통령의 권한 남용 행위에 대한 제도적 견제 수단이 퇴색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니아 소토마요어 판사는 동료 진보 성향의 엘레나 케이건 판사와 케탄지 브라운 잭슨 판사와 함께 “이 판결은 사실상 대통령 주변에 무법지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어떤 식으로든 공식 권한을 사용하면, 그는 이제 형사 기소에서 보호받을 것이다. 해군 특수부대 6에게 정치적 라이벌을 암살하라고 명령할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쿠데타를 조직할까? 사면을 위해 뇌물을 받을까? 면제. 면제, 면제, 면제”라고 성토했다. 그는 “이제 대통령은 공식적인 권력을 행사할 때마다 법 위에 있는 왕”이라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 선거 캠프 측도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독재의 열쇠를 건넸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 판결로 달라지는 사실은 없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선거에서 패배한 후 격노해 폭도들에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전복하도록 부추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무엇이든 할 것”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한 큰 승리”라며 “미국인이어서 자랑스럽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건의 형사 기소 건 가운데, 오는 11일 1심 형량이 선고될 성추문 입막음돈 지급 관련 회사 서류 조작 사건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78세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형사 기소된 최초의 전직 미국 대통령이며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뒤집기 시도 관련 공소 사실 중 일부가 ‘면책 대상인 공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으면서 이 사안을 보는 미국 유권자들의 인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대법원 결정을 계기로 지난달 27일 TV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극도로 부진한 성과를 거두면서 기세가 오른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존 제도와 법적 제한을 우회해가며 ‘목표’를 달성하려는 ‘본능’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중 잇단 보수 판사 기용으로 인해 6대 3의 확고한 보수 우위로 재편된 연방 대법원이 잇달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족쇄를 풀어주는 결정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편, 지난달 TV 토론 여파로 ‘민주당 후보 교체론’까지 나왔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저녁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일각에서는 토론으로 야기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지만, 현재까지는 눈에 띄는 별다른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들 (출처: A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들 (출처: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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