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이솜 기자] “우리는 세계 기후 역사상 가장 기상천외한 사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기온이 가장 큰 폭(최대 섭씨 10도까지)으로 올라 수만건의 기록이 깨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30여년간 세계 기온을 추적해 온 기후학자이자 기상 역사가인 막시밀리아노 에레라가 자신의 엑스(구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지구가 좀처럼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열병을 앓고 있다. 지난 9개월 동안 각각 최고 기온 기록을 세웠고, 올해 3월이 10번째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말부터 전 세계 대부분 나라의 기온 기록이 깨졌다. 더 추워진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은 더워지는 추세다. 에레라 박사는 지난주 천지일보에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탈리아만 제외하고 모든 국가들이 크든 작든 각 기온 기록을 깼다”고 밝혔다.
❗️ETRAORDINARY
— Extreme Temperatures Around The World (@extremetemps) March 24, 2024
We are witnessing the most insane event in world climatic history.
Dozens of thousands of heat records are being brutalized allover the world in every continent with the hugest margins ever seen in world climatic history (even by 10C).
Expect many tweets coming.
◆ ‘괴물 폭염’ 아시아… 여름 같은 더위 뒤덮어
가장 폭염이 심각한 곳 중 하나는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다.
필리핀에서는 최근 견딜 수 없는 더위로 인해 학교 수천개가 대면 수업을 중단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장기간 건조한 날씨로 인해 쌀 가격이 급등했으며 태국 해역의 온도는 너무 높아 과학자들은 산호가 파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미얀마는 44.3도, 인도는 43.7도, 태국은 43.5도, 중국은 41.8도(4월 4일)를 기록했다. 이 네 국가의 경우 4월 초에 이렇게 더웠던 적이 없었다. 베트남 북서부의 Yên Châu에서는 이맘때 전례 없는 기온인 40.6도까지 올랐다. 남아시아에 있는 섬 나라 몰디브 수도 말레는 이날 34.0도를 기록하며 지금껏 가장 더웠던 4월과 같은 기온을 기록했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의 기온은 28.1도에 달했는데 이는 1876년 관측 이래 평균 월간 최고 기록을 5도 정도 웃돈 수치다. NHK 월드의 기상학자 모리 사야카는 “3월 31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7월 같은 더위가 일본을 뒤덮었다. 70곳이 월간 기록을 깨거나 동점을 기록했다”고 엑스에 올렸다.
지금의 폭염은 지난 2월부터 이어진 사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지난 2월 계절 평균을 훨씬 웃도는 기온인 30도 이상을 기록했다고 경고했다. WMO는 이 무더운 날씨가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화와 이 지역에 더 덥고 건조한 환경을 가져오는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지구관측소 소장인 벤자민 호튼 교수는 4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지난 12개월 동안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지구가 경험한 더위 수준은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며 “우리는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지만, 2023년과 2024년에 이 모든 기록을 깨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도 조금 더 앞당겨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전 세계에서 이런 종류의 더위에 회복력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며 “사회가 적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각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일부 지역의 온도가 기상청이 경련과 탈진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위험 수준인 42도를 넘기면서 약 4000개의 학교가 대면 수업을 중단했다.
폭염은 농업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작년 장기간 건조한 날씨를 경험한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12월에 마침내 비가 내리자 군대에 모내기를 도와달라고 명령했다. 로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2억 7천만명의 주식인 쌀 가격은 작년 2월에 비해 16% 이상 상승했다. 주민들은 이에 정부 보조금이 지원되는 쌀을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야 했다.
베트남에서는 올해 초 운하의 수위가 너무 낮아 일부 지역의 농부들이 농작물을 운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콕 포스트가 인용한 경제 분석에 따르면 태국에서는 농작물 수확량 감소로 인해 올해 농부들의 부채가 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당국이 강우량 부족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구름 파종을 실시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는 22세 남성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극심한 더위의 영향은 이 지역의 바다에도 미치고 있다. 태국 카세사트 대학교 수산학부의 톤 탐롱나와사왓 조교수는 이번 주 SNS를 통해 엘니뇨와 지구 온난화가 결합해 태국만의 산호와 어류가 파괴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하라. 진짜 끓는 바다가 도래했다”고 경고했다.

◆남미·유럽·북아프리카도 ‘펄펄’ 끓는다
남아메리카 역시 가장 심각한 폭염 속에 있다.
6일 볼리비아의 푸에르토 수아레즈는 38.4도로 4월 중 가장 더운 날을 기록하는 등 비정상적이고 전례 없는 고온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일엔 코스타리카에서 4월 최고 기온인 40.2도를 기록했으며 과테말라 35도, 멕시코 43도, 프랑스령 기아나 36도로 각각 기록을 세웠다. 3월에는 과테말라에서 44도, 코스타리카는 41.5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남미 많은 나라에서는 4월에도 최저기온이 25도를 넘는 날이 여러 차례 기록됐다.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도 이례적인 폭염이 시작됐다.
5일 모로코의 아가디르에서 39.0도, 카사블랑카에서 37.0도까지 오르며 4월 중 가장 더운 날을 기록했다. 스페인 북부에서 최저기온 22도 이상, 프랑스에서 최고 기온 31.8도가 보고됐다. 세르비아는 1951년 이후 가장 따뜻한 3월을 보냈다.
특히 3월에는 유럽 발트해 국가들을 포함한 다음 8개국에서 최고 기온 국가 기록을 세웠다. 알바니아 29.6도, 벨라루스 27.2도, 크로아티아 29도, 에스토니아 21.3도, 라트비아 22.8도, 리투아니아 25.5도, 몰도바 29.7도, 폴란드 26.4도를 각각 기록했다. 그리스, 터키, 우크라이나, 러시아에서도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EXCEPTIONAL HEAT CARIBBEANS/SOUTH AMERICA
— Extreme Temperatures Around The World (@extremetemps) April 5, 2024
Unprecedented hot nights for April were widespread today like the TMIN 27.5C at Point Salines AP Hottest April night ever in GRENADA.
Also record hot night in FRENCH GUIANA and in several stations of Bolivia,Paraguay and Brazil. pic.twitter.com/CVaxrsTPg5
반면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은 매우 추운 날씨를 겪고 있다. 5일 핀란드 일부 지역에서는 영하 19.2도, 노르웨이에서는 영하 26도를 기록하며 혹한의 기록을 세웠다.
호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4일 호주 브리즈번에서는 최저기온 23.1도로 역대 4월 중 가장 더운 밤을 기록했다.
최근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은 2024년이 기록상 가장 따뜻한 해가 될 확률이 45.1%로 2023년을 넘어설 것이며, 가장 따뜻한 해 상위 5위 안에 들 확률이 99.9%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전 세계 대기 및 해수면 온도는 연일 기록적인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1년 전 같은 시기에 관측된 기온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지구에 자연적으로 열을 더하는 엘니뇨 기후 패턴이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소멸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지구 온난화가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