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금융업종 중 가장 많은 ‘규제·규율 산업’으로 불리던 보험산업에 큰 규제들이 대거 폐지된다. 대표적으로 보험상품 사전신고제와 이자율 규제 등이 폐지된다. 일각에서는 이를 통한 특정 업체들의 독점을 우려하고 있지만 우려보단 이득이 더 많을 거라는 게 정책을 시행하는 당국의 입장이다.
1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보험산업 경쟁력 제고 로드맵’에 대한 개괄을 발표하면서 “시장점유율 순위가 그대로 유지·정체되는 등 그간 보험산업은 역동성이 결여돼 있었다”며 “이를 바꾸기 위해 과도한 규율·규제를 폐지해 상품설계와 가격결정의 큰 틀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보험산업의 시장점유율은 10년째 부동이다. 생명보험사는 2005년 삼성(33%), 한화(17%), 교보(16%)에서 2014년 삼성(28%), 한화(14%), 교보(12%)로 비율만 달라졌을 뿐 순위의 변동은 없다. 손해보험 시장 역시 2005년 삼성(30%), 현대(15%), 동부(14%) 순위가 2014년(삼성 27%, 현대 17%, 동부 15%)에도 동일하게 이어졌다. 그에 반해 은행은 2005년 국민(16%), 농협(11%), 우리(11%)에서 2014년 국민(13%), 우리(12%), 신한(12%)으로 변했다.
이러다 보니 아직 국제보험그룹(IAIG)에 해당되는 국내 보험회사가 배출되지 못하는 등 글로벌 경쟁력 배양도 미흡하다. 임 위원장은 “가장 큰 원인은 다양한 규제로 인해 판매 채널 확보에만 치중하는 ‘양적 경쟁’만 진행된 것”이라며 “보험상품 사전신고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보험상품의 가격을 통제했던 이자율 관련 규제를 폐지하는 등 시장경쟁을 통한 상품과 서비스의 ‘질적 경쟁’이 이뤄지게 경쟁력 제고 로드맵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드맵의 큰 틀은 ▲상품개발 자율성 제고 ▲다양한 가격의 상품공급 확대 및 비교공시 강화 ▲자산운용규제 패러다임 전환 ▲판매채널 혁신 ▲새로운 보험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 등이다.
우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상품 사전신고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사후보고제로 바꾼다. 천편일률적인 상품이 나오는 원인이 됐던 10개의 표준약관제도도 전면 재정비해 자율화한다. 보험사들은 자사 고객의 요구에 맞춰 상품을 자유롭게 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 갑작스럽게 보험료가 상승할 수 있는 실손·자동차 보험은 2018년 초까지 단계적 자율화를 하고 이외의 8개 표준약관은 2017년 초까지 자율화한다.
상품 가격의 차별을 저해했던 가격통제 장치도 폐지하거나 전면 재정비한다. 위험률 조정한도나 할증한도 관련 규제는 대폭 완화하고, 보험료 산정이나 지급 등과 관련해 적용하던 이자율(표준이율, 공시이율 등) 관련 규제는 단계적으로 자율화한다. 이를 통해 보험사들의 기업 상황이나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자유롭게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자율화의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실손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의 규제완화는 향후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다양해지는 상품을 소비자가 쉽게 확인하고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보험슈퍼마켓을 활용한 보험료 비교·공시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 자산운용규제도 사전적·직접적 통제에서 사후적·간접적 감독 방식으로 바꾼다. 대주주 관련 자산운용비율규제를 제외한 한도규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외국환 및 파생상품 관련 자산운용규제는 전면 개편한다. 이에 따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RBC 제도는 강화해 건전성 감독제도의 국제적 정합성을 제고한다. 판매채널도 혁신해 부당·불공정 행위가 지적된 일부 보험대리점·설계사에 대한 규율을 강화하고,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의 보험상품중개업자 전환을 통해 상품판매에 대한 권한·책임을 명확히 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아날로그적 규제도 일제 정비해 기존 대면가입 방식에 맞춘 보험가입 절차를 온라인 환경에 맞춰 대폭 간소화하고 잔존하는 공인인증서 사용의무도 폐지한다. 또한 보험산업에 다양한 핀테크 기술 접목도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규제 자율화 과정에서 예상되는 기업부실이나 소비자 피해를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기업 부실은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적 기준을 정교화하는 방법으로, 소비자 피해는 부실판매에 대한 보험사들의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임 위원장은 “규제 폐지와 자율화가 당국이 손을 놓고 있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장을 더 면밀히 모니터링해 상황을 보며 순차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국도 많은 걱정과 우려 가운데서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이라며 “하지만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기에 회사의 역량을 가지고 경쟁하는 구조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혁은 당국과 금융회사가 같이하는 것”이라며 “규제를 풀어주면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경쟁을 해야겠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며 “당장의 참여는 기대하긴 어려워도 당국이 규제개혁의 진정성을 신뢰하게 만든다면 보험회사들의 행동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국은 보험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2017년까지의 로드맵을 완성해 10월 중 세부 내용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