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10월 1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자 공포에 질린 김일성은 그의 측근이자 내무상(內務相)인 박일우에게 친서를 주어 베이징의 중난하이(中南海)로 급파한다. 중난하이는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공지도자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박일우는 바로 그곳의 마오쩌둥을 찾아간다. 친서는 당시 북한의 부수상이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이던 남로당(南勞黨) 총수 출신 박헌영과의 공동명의로 돼 있었다. 김일성의 친서는 더 말할 것 없이 ‘마오’로 하여금 간절히 파병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디. 박일우는 눈물을 흘리며 ‘마오’에게 그 친서를 바친다.

이미 그 전에 소련은 김일성의 간청을 받아들여 ‘마오’에 파병을 요청해두었었다. 그럼에도‘보내느냐 마느냐’로 고민하던 ‘마오’는 드디어 김일성 친서를 받은 지 1주일 뒤인 10월 8일 ‘보내는 것이 안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이익이 크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파병을 결행키로 결정한다. 그 결정은 바로 그날 평양 모란봉 지하지휘소에서 불리한 전황에 속을 태우며 베이징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김일성에게 전달된다. 김일성은 ‘마오’가 파병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가슴 벅찬 기쁨을 이기지 못해 독주 3잔을 연거푸 들이마셨다는 얘기가 있다. 그때 김일성의 나이는 한참 팔팔한 38살이었다.

하지만 쫓기는 적들의 이런 음모와 은밀한 움직임만으로는 기세등등하게 탄력이 붙은 맥아더의 진군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유엔군의 평양 접근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자 김일성은 쫓기면서 저희네 임시수도로 생각해두었던 평안북도 강계를 향해 평양을 탈출한다. 그것이 10월 13일이다. 짐작컨대 그날도 아마 제공권을 장악한 유엔군의 공중 정찰을 피하기 위해 어두운 밤을 택해 달아났을 것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김일성은 그 전날 밤과 그 전전날 밤 방송을 통해 그의 휘하 군대에 소련과 중공이 자신들을 돕기로 했으니 끝까지 항전 분투하라고 명령했었다.

그랬지만 정작 그 자신은 겁을 먹었던지 유엔군이 평양에 오기 훨씬 전에 풍전등화의 평양에서 꼬리를 내빼고 말았다. 이렇게 쫓겨 도망은 치면서도 김일성은 중공군의 파병 희소식을 이미 귀에 담아둔 처지이므로 앞이 절벽을 마주한 듯 캄캄한 심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헤매고 쫓기지만 도리어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등불 하나는 손에 움켜쥔 듯한 희망이 가슴 한 구석에서 꿈틀거렸을지 모른다. 적어도 한왕(漢王)의 군대에 쫓기던 나머지 오강의 북쪽 언덕에 내몰려 자결하고만 항우(項羽)와 같이 더 갈 데 없는 막장에 부닥친 심정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마오’가 파병을 결정하고 김일성에게 이미 통고까지 했음에도 맥아더와 고위 참모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입증하는 눈으로 보는 증거는 매서운 추위가 다가오거나 말거나,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투입되고 있거나 말거나 별 조심성 없이 밤낮 계속 이루어지는 쾌속 북진이었다. 미군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전쟁은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명절을 본국에 가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느냐 마느냐 하는 희망의 얘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것은 모골이 송연한 긴장감의 전쟁 분위기가 아니라 맥아더의 불패 신화가 낳은 일종의 ‘도취감(euphoria)’이었다. 이는 뉴욕 타임스 데이비드 핼버스탬 기자의 저서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에 잘 나타나 있다.

맥아더가 얼마나 적정(敵情)에 어두웠는지는 10월 15일 태평양 웨이크 섬(Wake Island)에서 열린 트루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는 말했다. “중공군의 참전은 없으며 만약 있다면 그들은 괴멸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데 비해 트루먼은 거의 조용히 듣기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르긴 몰라도 트루먼은 여러 채널의 보고를 통해 중공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감(感)을 가지고 있었으며 맥아더에게 이를 확인하려 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날 자신만만한 맥아더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직접 꺼내지는 않았어도 돌아서서는 머리가 많이 무거워졌을 것 같기도 하다.

웨이크 섬 회담을 마친 며칠 후인 10월 20일 맥아더는 한국군과 미군이 탈환한 평양에 비행기로 날아온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더니 “날 맞아줄 고위인사가 누군가? Kim Buck Tooth는 어디 있지?”라고 농담을 한다. 맥아더가 말하는 ‘김 벅 투스(Kim Buck Tooth)는 그가 말하는 김일성의 별명이며 직역하면 ‘김 뻐드렁니’다. 맥아더는 김일성을 그렇게 불렀다. 그는 밤을 새지 않고 바로 도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평양 방문을 통해 달라진 것은 없으며 벌써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사실도 몰랐다.

중공군은 바로 전날 10월 19일 평안도의 춥고 험준한 산악으로 대군이 숨어들어 한국군과 미군이 더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치명적이며 엄청난 덫이었다. 그 덫을 통과하지 않고는 한국군과 미군은 북으로 더 진격할 수도 남으로 후퇴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중공군의 입장에서는 한국군과 미군이 될 수 있으면 산악 깊숙이 들어와 주면 금상첨화와 같고 압록강을 향해 그 덫을 지나쳐가도 좋았다. 지나쳐가더라도 내려갈 때 길이 그 길뿐이므로 그때 잡으면 되고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는 자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산악 지형과 추위에서는 위장과 은폐 엄폐 기도비닉(企圖庇匿)등이 쉬워 월등한 공군력의 공중지원도 잘 먹히지 않으며 성능이 월등한 군사장비들도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국군과 유엔군의 고전은 불을 보듯 뻔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모두에서 국군과 미군은 곧 엄중한 사태에 직면해 일시에 와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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