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재벌 3세의 안하무인식 태도에 비난이 쏟아지면서 여론이 요동을 친다. 대한항공(KAL) 부사장의 경우다. 창업자로부터 3세 경영인에 해당하는 그는 어느 날 자사 비행기의 1등석에 탔다. 그때 기내 사무장이 심심풀이로 땅콩을 먹으라고 봉지 채 내민 것 같다. 그는 사무장에게 따졌다. “땅콩을 손님에게 봉지 채 주는 것이 맞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질책이 여기까지였다면 목소리가 높으나 낮으나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이지만 급기야는 그 사무장에게 “비행기에서 내려” 하고 명령했다. 너무 격분하고 너무 나갔다. 기장은 그 지엄한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애초에 승객을 태운 램프(ramp)로 다시 비행기를 회항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땅콩 회항’ 소동의 개요다.

‘땅콩 회항’ 소동이 항공기 운항 관련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그 부사장이 사무장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폭언을 했는지 등은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그 결과를 기다려 볼 일이다. 그럼에도 당장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땅콩 회항’ 소동에서는 시쳇말로 ‘오너 맘대로’라고 말하는 ‘오너’의 안하무인식 전횡이 뚜렷이 읽히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 시대가 회자된 지 이미 오래지만 우리의 기업 문화는 여전히 이쯤에서 예전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일로도 여론 재판은 당국의 조사나 조치를 훨씬 앞서 나간다. 한참 나라 안팎의 언론과 여론, 누리꾼들의 혹독한 비판이 이번 소동을 일으킨 폭군적 주인공에게도 쏟아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대중 속에서 잠자던 재벌에 대한 사회적 위화감의 폭발이라 볼 수 있다. 가끔은 살벌하며 마녀사냥에서 보는 일말의 광기(狂氣)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가 만약 평범한 경영자였다면 이런 정도로 혹독한 뭇매는 얻어맞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물론 평범한 경영자였다면 그런 반응을 불러올 만큼 종업원에게 그렇게 심하게 하지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뒷감당에 자신이 있는 ‘오너’의 일가였기에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는 서양 속담대로 부귀의 상징인 은수저(silver spoon)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겁 없고 거침없는 재벌 3세다. 그에게는 운이 안 좋은 날이었는지 다른 때 같으면 무사통과 되었을 평소 버릇대로의 안하무인식 행동이 그만 큰 화를 부르고 말았다. 타이밍도 안 좋았다. 재벌의 ‘갑(甲)질’이나 골목 상권까지 파괴하는 탐욕, 특권 의식, 간간이 터지는 재벌 2·3세들의 일탈에 사회의 반응이 무척 민감해진 때 아닌가.

지금 국내 간판 재벌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는 창업 3세, 즉 창업자의 손자에 이르렀다. 이는 그들에게는 축복인지 몰라도 사회적 시각에서는 주목거리이기도 하고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기업을 일으킨 창업자들의 고생은 대부분 피눈물나게 혹심한 것이었다. 그들의 아들들인 2세들은 어느 정도 창업자들의 그런 고생과 노력을 안다. 하지만 3세 손자 경영자들은 그것을 전혀 모른다.’ 설마 다 그럴까마는 만약 일부가 사실일지라도 이는 부와 명예를 향유하는 것에는 익숙하고 경영의 고초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3세들이 자칫 기업을 말아먹어 버릴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우를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정작 큰 걱정은 자신의 집안만 말아먹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까지 충격에 빠뜨리거나 거덜이 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에 도사린다.

왜 그런가. 국민의 세금인 정부 돈이나 은행 돈이 재벌에 지원되지 않은 곳이 없고 국민이 주주로 참여하지 않은 재벌이 없으며 그들 계열 보험회사나 은행, 저축 은행에 돈은 맡기지 않은 국민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런 실수를 하는 애송이가 정말로 있으면 절대로 안 되지만, 그런 철없는 재벌 3세가 경영 실권을 손에 쥐는 어떤 재벌 기업이라 하더라도 그 기업은 국가 경영이나 국민 생활과 공동운명체가 아닌 곳이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재벌을 적으로 돌릴 수도 없다. 이래서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바로 국가와 국민 생활에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성공이 그들만의 성공일 수 없으며 그들의 실패가 그들만의 실패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갈수록 더 강조되는 것이지만 기업들이 그에 맞춰 그 같은 인식을 그만큼 더 철저히 해나가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만족할 만한 것이 없다.

기업이 과감히 투자에 나서고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치열한 ‘상혼’을 발휘하는 것이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기업의 ‘영혼’을 발휘하는 것이 된다. 기업 생태계가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국가나 국민 생활과 기업의 연관성이 밀접해지는 상황에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생적 ‘영혼’을 발휘하는 것은 절실하며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남기게 될 뿐 아니라 그 기업은 아무리 공룡처럼 덩치가 크더라도 종국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치열한 ‘상혼’만을 부각시키는 ‘비즈니스 논리’만으로서 생존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기업도 국민과 소비자, 여론과 함께 가야만 산다.
그런 의미에서 부질없이 ‘오너’ 경영 시스템의 전횡적 측면이나 부각시킨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우는 재벌 시스템에 한 번 더 자해를 가했다. ‘오너’가 윽박지르는 소통구조, 전문경영인이 오금을 못 펴는 ‘오너’ 기업 문화는 족벌 세습이 당연시 되는 풍조와 함께 사라져야 한다. ‘오너’나 그 일족이 기업에서 황제나, 황태자, 공주, 옹주처럼 군림하려하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王侯將相寧有種乎/ 왕후장상영유종호)’ 하는 비호감만 더 커진다. 그래 좋을 것이 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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