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치 않는 어둠의 그늘에서 슬픔으로 얼룩지다 스스로 목숨을 져버리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 나약한 자들의 아픔도 있지만 그 아픔을 참고 궁색하지만 열심히 살아보려는 자들도 있다. 한편으로 이들과 더불어 손잡아주고 함께 하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가는 이들도 있다. 꼭 물질적인 도움을 줘서도 아니다. 단지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삶, 즉 함께 하는 삶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사업가가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해 이익의 재분배를 실현하고, 환원을 통해 밝은 사회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서 집안환경이 어려웠고, 또한 양친을 일찍 여윈 탓에 친척집에서 지내야 했으며 그 때문에 제때에 하고 싶은 학업을 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먹고 사는 일 또한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게기가 된 듯하다.
연말연시에 신문과 방송에 떠들어 대는 이웃돕기현장은 위문품 앞에서 사진 찍기 바쁘고 항상 그런 선행을 베푸는 것인 양 고고한 척하는 사람들 진정한 이웃을 생각하기보다는 본인의 공적을 치세우는 웃지 못 할 해프닝에 고개를 저으며 나 표영태는 훗날 진정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서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겨자씨처럼 작지만 실천하는 일들이다. 우리 하천과 강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작은 출발이 되기를 기대하며 관악산 및 계양산 인천 등을 다니며 매주 일요일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오물 및 쓰레기 등을 수거해 우리 강산을 병들게 하지 않고 깨끗한 금수강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일념으로 전념했고, 지금도 여전히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관여치 않고 행하는 일이 나의 일상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또한 한편으로는 정말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집수리 봉사 밑반찬 만들어 주기 등의 작은 실천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정부나 지자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들을 위한 봉사가 그것이다.
사실 차상위 계층은 위기의 가정도 많다.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그러나 자녀 자체가 자기 몸 하나 챙기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 부모를 돌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며 끼니를 거르고 정말 사람이 거처하기 힘든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퀭한 눈으로 하늘을 원망해 보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가정들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여름 어느 날 이러한 차상위 계층 중 한 분을 위한 집수리봉사를 할 때의 일이다. 그날 시간이 허락된 자원봉사자 6명과 함께 우리는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김 모 할머님 댁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70세 후반으로 보이시는 할머니 한 분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모습은 세상에 대한 원망, 그리고 뭔지 모를 한 맺힌, 그래서 할 말을 잃은 눈동자로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봤고, 또한 기거하던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지금도 이런 곳에 이렇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구나! 할 정도로 허름하며 위생상태도 엉망인 곳에 기거하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가 집수리를 해드리겠다고 하자 할머니 왈 “나는 집수리를 부탁한 적도 없고 또 그럴 돈도 없으니 다른 곳에 가서 알아 보슈”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고 염려하시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와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남편을 일찍 여윈 할머니는 젊어서 온갖 고생을 하며 키운 자녀들이 있었으나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조차 모를 뿐 아니라 연락도 끊긴 지 10여 년이 넘는다고 했으며 그동안 박스를 주워 은근히 생활해 가는 할머니로서 설상가상으로 지난겨울 눈길에 넘어져 허리와 다리를 심하게 다친 상태로 병원 한 번 가지 못하고 파스 몇 장으로 지금까지 해결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할머니를 안심시킨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집수리를 시작했다. 일단 청소 한 번 하지 않아 온갖 잡동사니와 먼지로 쌓인 집 안쪽부터 들어내어 털고 닦고 도배를 시작하고 바닥 그리고 보일러 지붕 등등 모든 부분을 내일처럼 하기 시작했고, 또한 할머니가 올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땀방울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조차도 시원했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늦은 점심을 먹게 됐는데 가장 편한 자장면을 먹기로 하고 음식을 시켰다. 그리고 음식값을 지불하려고 하자 할머니께서 이놈들 하며 호통을 친다.
우리는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할머니 왈 “내가 아무리 이렇게 살아도 니들 자장면 사줄 돈은 있어”하며 허름한 치마속 안 깊숙한 고쟁이 주머니에서 내시는 손에 꼬깃꼬깃 접은 돈을 올려놓으시고 손바닥에서 살포시 주름살이 하나 둘 퍼지는 일천 원 지폐에 율곡 선생님 얼굴, 일만 원 지폐에 세종대왕님의 얼굴을 보며 할머니는 행복해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본인이 골목골목을 다니시며 박스와 빈병을 주워 푼푼이 모은 돈이며 나쁜 짓 해 모은 돈이 아니라 하시며 즐겁게 먹자고 하신다. 할머니의 사랑과 눈물이 섞여 있는 그 자장면이 얼마나 맛있던지 이 세상에서 먹어본 자장면 중 사랑과 정성이 담긴 당대 최고의 자장면이었다. 꿀맛 같아 두 사람 먹다 한 사람이 사라진다 해도 모를 지경이었지만 식사하는 내내 행복한 우리 모두의 눈가에는 웬일인지 이슬이 맺히고 있음을 보았다.
식사 도중 할머니는 이야기하셨다. 할머니 사후에 몇 푼 안 되는 돈이겠지만 이것저것 쓰다가 남은 돈과 본인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하셨고, 본인의 육신도 병원에 기탁해 장기며 골수 전반을 필요한 자에게 주어 새로운 삶을 살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기증을 하셨다 라고 이야기해 주시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누가 할머니처럼 가지 사후의 일까지 이렇게 해맑게 처리할 수 있는가! 진정한 용기자요 나눔을 실천하는 자 아닌가, 오늘 할머니를 도움 주러 왔지만 오히려 우리들은 숙연했고 머리가 조아려졌다. 삶에 찌든 가운데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의 본보기요 본인의 어려움 속에도 남을 생각하고 이웃에 대한 참사람을 실천하는 함께 하는 삶의 본보기가 아니던가. 할머니 오히려 저희가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꼭 건강하세요. 올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부족하지만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하려 하고 다 함께 하자고 독려하는 것은 그날의 할머니가 몸소 보여주신 교훈을 생각하며 작지만 아름다운 한 알의 작은 겨자씨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표영태 수필가 약력-
문학광장 수필부분 등단
성일상사 대표
티뷰크 사회복지재단 이사
(사)연세사회복지회 이사
서울시 복지협의회 봉사활동 인증요원
구로구 신도림동 주민자치 위원장 역임
구로공구 상업협동조합 이사(12기)
제18회 구로구민상 수상(봉사부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