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정상회담에 나온 정상이 껌을 씹었다? 웃기는 얘기다. 엄숙한 정상회담을 희화화(戱畵化)한 것이다. 베이징 APEC(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저지른 무례다. 그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의장으로 나란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우물우물 껌을 씹었다. 풀어진 모습이었다. 접대 의전(儀典)이 소홀해서도 안 되고 접대 받는 손님은 의전에 맞추어 빈틈없이 행동해야 하는 것이 정상회담의 상식이다. 오바마는 그런 상식을 태연히 깼다. 잔치 준비에 온 정성을 쏟은 주최국의 기분이 몹시 상했을 것 같다. 무시당한 기분도 들었을 수 있고. 어쨌든 오바마는 정상회담에서 껌을 씹은 사상 초유의 무례한 정상이 되고 말았다. 전무후무한 일이 될 것이다.

일본 수상 아베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는 이 만남을 위해 중국에 애걸복걸, 여러 채널을 동원해 중국에 매달리고 보채고 사정을 해왔다. 아베의 굴욕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성사된 만남이었지만 그것은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베는 반가운 척 다가가 웃으며 시진핑 주석과 인사를 나누고 눈을 맞추려 애썼지만 시 주석은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대꾸가 없었고 표정은 냉담했다. 그날 만남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아베가 시진핑 주석을 알현(謁見)한 것에 불과하며 시진핑 주석은 의례적으로 아베를 만나주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정상회담이라고 하면 회담장에 당사국들의 국기도 내걸리고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는 두 나라 각료들이 엄숙하게 쭉 배석해야 되는 것이지만 그런 풍경과 격식은 찾아 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한다면 한중 양국 정상 간의 회담은 물 흐르듯 순조롭게 이루어져 베이징 APEC 무대의 외교가에서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만했다. 그동안 두 정상들은 벌써 여러 번 방한 방중의 상호 교환 방문 등을 통해 두터이 쌓아온 우정을 바탕으로 더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을 인식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를 인용해 ‘주고받는 정은 오래 나눌수록 더욱 친밀해진다(交情老更親/교정노경친)’라고 정상회담 서두에서 감성적인 인사를 건넴으로써 분위기를 띄웠다. 그것을 ‘자오칭라오겅친’이라고 중국어로 유창하게 말한 것이다. 이렇게 멋지게 가는 말에 시진핑 주석 역시 양국 관계 발전 추이에 만족을 표하면서 ‘양국 관계의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발전을 추진해 나가자’고 말한 것은 한 술 더 뜨는 화답이다.

한중 양국이 이처럼 우의를 쌓아가며 가까워지는 것을 안보 동맹국인 미국과 미국에 빌붙어 있는 일본이 경계하고 시샘한다고들 염려하지만 그런 것은 걱정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의 평화, 국가의 활로를 트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으로 더욱 긴밀해지고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여건에서 불가피한 일이며 떳떳한 일이다. 도리어 향후 그런 방향으로 더욱 활발하게 능동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이 소망이다. 그것이 미국과의 동맹을 해치거나 본질적으로 느슨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한 우리 외교의 자주성에 대한 지나친 간섭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우리는 동맹국의 근거 없는 경계와 시샘을 설득해야 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못한 나라도 거대한 나라들에 짓눌리지 않고 그들을 설득하고 달래며 잘도 어려움을 매끄럽게 헤쳐 나가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한중 관계가 밀접해지는 것을 한국의 중국 편향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현상 고착을 희구하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분명한 착시이며 착각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편향이 아니라 미개척 국가와 분야에 대한 새로운 외교 안보적 지평의 개척이며 경제의 활로를 넓히는 지극히 당연한 국가 생존과 국가 번영의 자구책이다. 우리는 그런 노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한편 미국과 일본이 한중 관계의 심화 발전을 경계하고 시샘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들 편에 있어 든든한 우리의 존재감에 대한 평가에서 출발하며 그것을 반증한다. 반대로 중국이 우리를 자신들에 우호적인 나라로 만들려 한다면 그 역시 우리가 훌쩍 커버리고 무거워진 국제 역학 구조상에서의 존재감 때문이다. 이들 나라 모두가 가까이 해봐도 이익이 없고 소용없는 나라에 구애할 리 없는 대외 관계에서 국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들이 양쪽에서 우리를 향해 구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우리에게 활용할 가치가 있는 자산이 되면 되었지 걱정거리는 아닌 것이다.

흔히 양쪽 사이에 끼이는 것을 염려하기도 하지만 국제 관계의 역동성으로 보아 끼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를 우리와 어느 나라 사이에 끼게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따라서 끼는 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어 내면 된다. 우리가 양쪽에 끼었다고만 염려하는 패배주의적 발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배격하는 것이 옳다. 물론 양쪽 사이에 끼어서 곤란한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못 풀 문제는 이 세상에 없다. 얼마든지 풀 수 있고 풀면 된다. 위기는 기회다. 만약 우리가 ‘끼었다’고 하는 주장에 백 번 양보한다면 이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나면 우리의 존재감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으로 신장할 것이 틀림없다.

APEC회의의 기선을 초장에 제압한 것은 한중 정상들의 서명으로 이루어진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체결이다. 이는 거대 시장으로 경제 영토 확장이 불가피한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였다. G2 경제 대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굳건히 하려는 중국으로서도 한국과 협정을 맺은 것은 파급력이 클 것이므로 커다란 경제외교의 성과를 거둔 것이 된다. 어떻든 베이징 APEC회의를 주름 잡은 것은 미국 일본이 배가 아플 만큼 주최국인 중국이지만 한국 역시 공동 주연이었다는 느낌이어서 뿌듯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하기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