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이해관계 첨예
정개특위 시기 이견
정기국회 ‘불똥’ 우려
경제·민생 현안 뒷전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개헌에 이어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정치권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개헌 공방이 가열되던 상황에서 느닷없이 터져버린 선거구 재획정 논란 때문이다. 개헌 이슈보다 휘발성이 매우 큰 선거구 문제는 정국을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시에 개헌 이슈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파문의 진원지는 헌법재판소다. 헌재는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 인구 편차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함께 현행 ‘3대 1’ 인구 편차를 내년 12월 31일까지 ‘2대 1 이하’로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여야는 일단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편치 않은 상황이다.

선거구 획정은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이다. 선거 때마다 선거구 획정 문제로 정치권이 선거 막판까지 갈등을 빚던 전례로 비춰보면 이번에도 차기 총선 직전까지 여야의 암투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 대형 폭탄이 떨어진 셈이다.

특히 20대 총선을 앞둔 이번엔 과거보다 더욱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제시된 인구 편차 기준에 따르면 현재 246개 지역구 선거구(9월 말 기준) 가운데 62개(상한인구수 초과 37개, 하한인구수 미달 25개) 지역이 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조정 대상 규모가 커질수록 충돌 확대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선거구 획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의원정수 조정,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그간 산발적으로 거론되던 사안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선거구 재획정 문제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정작 여야는 첫발조차 떼지 못하는 실정이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치개혁특위 구성 시기를 놓고도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기국회 이후 선거구 개편 논의에 착수하자는 입장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장 정개특위를 구성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선거구를 오히려 늘리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의원이 인구 증가분을 고려해 선거구 확대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선거구 개편 결과 지역구 의원이 늘어나는 경우 증가분만큼 54석인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 안팎에선 개헌보다 더 큰 블랙홀을 만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야가 차기 대권과 관련된 개헌보다는 당장 눈앞의 의석이 걸린 선거구 문제에 매달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헌 논의를 위한 정치적 동력은 점점 고갈되는 처지다.

또한 정기국회 역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와 민생법안 등 각종 현안을 처리해야 할 시기에 선거구 획정 문제를 둘러싼 기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다른 현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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