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주문인(周文仁)

한(漢)나라 경제의 낭중령에 주문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조상은 임성사람이었다.

그는 문제 때에 시의로 있다가 태자부로 자리를 옮겨 갔다. 거기서 공을 쌓아 승진을 거듭해서 태중대부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태자가 즉위하여 경제가 되자 낭중령에 기용되었다.

주문인은 아주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언제나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으며 오줌이 지린 아랫바지를 걸치고 일부러 청렴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경제는 안심하고 그를 자유롭게 자신의 침실까지 출입을 허용했다.

경제가 죽은 뒤에도 그는 낭중령에 있었지만 후궁에 관한 이야기는 끝내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가끔 경제는 신하들의 인물됨에 대해 물었지만 그때마다 “폐하 스스로 판단하십시오”라고 말하여 신하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경제는 두 번씩이나 그의 집을 찾아가서 경의를 표했다.

그가 수도인 장안에서 양릉으로 집을 옮긴 뒤에도 경제는 여러 가지 물품을 하사했으나 그 때마다 사양했다. 제후나 군신들로부터의 선물도 일체 받지 않았다.

경제가 죽고 무제가 즉위한 뒤에는 선왕의 충신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뒤 병으로 사직하고 2천석의 신분으로 고향에 돌아갔다. 그의 자손은 모두 대관에 올랐다.

◆만석군(萬石君) (1)

만석군의 성은 석이고 이름은 석분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조나라에 살고 있었는데 조나라가 진나라에 망했을 때 하내 땅 온으로 옮겨 갔다.

고조가 항우를 치기 위해 하내 땅을 지날 때 나이 15세로 하급 관리였던 석분은 고조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고조가 말을 시켜보니 솔직하고 조심성이 있는 소년이어서 몹시 마음에 들어 했다.

“너희 집 가족은?”

“예, 어머니가 살아 계시지만 불행하게도 장님이며 집은 가난합니다. 그리고 누이가 있는데 거문고를 좋아합니다.”

“계속해서 나를 따를 생각이냐?”

“예, 힘이 있는 데까지 받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고조는 석분을 중연의 자리에 앉히고 황제를 만나는 일을 맡아보게 했고 누이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누이가 후궁으로 들어오자 집도 장안의 척리로 옮기게 했다.

그 뒤 석분은 공을 쌓아 문제 때에는 태중 대부에 올랐다.

재주와 인품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공손하고 부지런한 면에서는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문제 때에 동양후 장상여가 태자 대부(태자의 스승)에서 물러났다. 그 후임 선출에 있어서 대신들은 모두 석분을 추천했다. 그래서 석분은 태자 대부에 임명됐다.

태자인 경이 제위에 오르자 석분을 구경으로 삼았다. 그러나 경제는 이런 건실하고 곧은 인물을 언제나 옆에만 있게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체면이 깎이지 않도록 제후의 재상으로 보냈다.

석분의 아들은 큰아들 건과 차남, 삼남, 그리고 막내아들까지 모두 칭찬이 높았으며 2천석의 벼슬에 올랐다. 이런 일 때문에 경제는 “석군과 그의 네 아들 모두 관위 2천석, 모두 합해 1만석이다.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영예가 이 일가에 쌓였다”고 말했다.

그 뒤부터 석분의 이름이 만석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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