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섭정은 큰돈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리고 노모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 청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섭정의 노모가 죽자 섭정은 위나라에 있는 엄중자를 찾아가서 도대체 원수라는 상대가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그 원수 갚을 일을 시켜 달라고 청한다.
엄중자는 자세하게 그 사정을 섭정에게 설명했다.
“내 원수는 한나라의 협루입니다. 협루는 국왕의 숙부가 되며 일족이 번성하여 경계도 대단히 엄중합니다. 지금까지 몇 번씩이나 자객을 보냈지만 언제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이 일을 맡아 준다면 그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장사들과 거마를 충분히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에 섭정이 대답했다.
“여기서 한나라까지 먼 길은 아닙니다. 상대는 한나라 재상이며 더구나 왕의 친척입니다. 이쪽 편은 오히려 사람의 수를 늘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계획이 새어나가면 한나라는 전력을 다해 당신을 노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섭정은 거마비와 장사들을 거절하고 단신으로 칼 하나만 의지하고 한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
한나라에 도착한 섭정은 곧장 협루를 수소문했다. 협루는 관청 안에서 정무를 보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무장한 수많은 병사들이 엄중하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섭정은 곧장 그 속으로 뛰어 들어 계단으로 올라가서 협루를 찔러 죽였다. 관청 안은 큰 혼란에 빠졌다. 섭정은 크게 외치면서 수십 명을 죽인 다음 스스로 자기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알을 후벼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드러낸 채 죽었다.
한나라에서 섭정의 시체를 거리에 내놓고 현상금을 걸어 그의 신원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나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금을 늘려서, “그의 신원을 아는 자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포고를 냈으나 그의 신원을 알지 못한 채 그럭저럭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섭정의 누이가 그 소문을 들었다. 한나라 재상 협루를 죽인 사람의 신원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그 시체를 거리에 내놓고 천금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소문에 누이는 순간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내 동생임에 틀림없다. 엄중자에게 그처럼 인정을 받고 있었으니까.”
누이는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제하며 곧바로 한나라로 떠났다. 시체를 확인해보니 과연 동생 섭정이었다. 누이는 시체에 엎드려 몹시 슬퍼했다.
“이것은 내 동생인데 지의 심정리에 사는 섭정이라는 사람이오” 하고 외치자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 재상을 죽였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천금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대는 그것을 몰랐느냐? 일부러 와서 이름을 부르다니.”
그러자 섭정의 누이가 말했다.
“그 일은 나도 알고 있소. 동생은 개 잡는 천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또 내가 미처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소. 그 어머니도 죽고 나도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엄중자는 그런 천한 내 동생을 사나이로 알아주고 교제를 청해왔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사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하지 않습니까? 동생은 다만 살아 있는 나에게 화가 미치는 것이 두려워 이렇게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고 내 몸에 미칠 화 때문에 이런 동생의 이름을 함부로 묻어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한나라 사람들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섭정의 누이는 말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을 향해 세 번 외치고는 동생 곁에서 죽었다. 이 사건을 전해들은 진, 초, 제, 위나라 사람들은, “섬정도 훌륭하지만 그 누이도 또한 장한 여인이다”라고 말했다.
동생은 이름을 세상에 알리려는 일념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리 길을 걸어 거리에서 동생의 뒤를 쫓아 죽었다. 누이가 그런 여인이라는 것을 섭정이 알고 있었더라면 처음부터 엄중자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엄중자는 사람을 잘 알아보았고 유능한 인물을 얻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