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황후 독고(獨孤)씨는 유달리 질투가 심했다. 황제가 되기 전부터 양견은 다른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못했다. 황제가 된 양견은 울지형(尉遲逈)의 손녀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독고황후가 좌시할 리가 없었다. 황후는 문제가 조정에 나간 틈을 이용하여 그녀를 살해했다. 대노한 문제는 황후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못하고 혼자 말을 타고 궁에서 나가 산골짜기를 뛰어다니며 울분을 삭였다. 고경이 따라가 간신히 달래서 궁으로 데리고 왔다. 문제는 부자유한 신세를 한탄했다. 고경은 아녀자 때문에 천하를 버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고경은 황제 부부 사이를 좋게 만들었다. 황후도 고경을 좋게 평가했다. 그러나 나중에 고경이 자신을 가리켜 아녀자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몹시 화를 냈다.
태자 양용(楊勇)은 황제 부부의 골칫거리였다. 틈을 노려 차남 양광(楊廣)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태자를 폐하고 양광을 세우려던 양견이 고경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기에서 고경의 순수하고 충직함은 문제로 변했다. 그는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들먹이며 멀쩡한 태자를 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직언했다. 양광과 독고황후는 고경을 제거할 계획을 꾸몄다. 이 무렵 양견은 동궁의 무사들 가운데 우수한 자들을 선발하여 황궁을 호위하게 했다. 고경이 다시 적극적으로 반대하자 문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경의 아들은 양용의 사위였다. 양견은 그 때문에 고경이 태자를 옹호한다고 생각했다. 고경의 부인이 병으로 사망하자, 독고황후는 문제에게 새로 아내를 얻게 하라고 권했다. 아내를 사랑했던 고경은 한사코 사양했다. 마침 고경의 애첩이 아들을 낳았다. 독고황후가 양견에게 대들었다.
“고경을 왜 그렇게 신임하십니까? 폐하도 첩을 얻고 싶습니까?”
문제도 문득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고경을 계속 신임했다가는 황후로부터 엄청나게 잔소리를 들을 것을 생각하니 골치가 아프기도 했다. 문제가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자 고경은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다가 일단 결정이 나자, 충실한 사람답게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다. 수군은 소득도 없이 돌아왔다. 독고황후는 고경이 일부러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양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원정군 사령관은 한왕(漢王) 양량(楊諒)이었다. 책임이 두려웠던 그는 고경이 자기의 명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했으며, 자기를 죽이려도 했다고 모함했다. 지난날의 양견이었다면 아무리 아들의 말이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의심이 들자 아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고경은 파면되고 말았다. 미안했던 양견은 고경을 잔치에 초대하여 ‘짐은 공을 등지지 않았는데, 공이 스스로 들을 돌리고 말았다’고 발뺌했다. 의심이 의심을 낳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한 나라의 군주가 평범한 사람처럼 오락가락했다가는 나라를 잃고 국민들을 괴롭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