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어느 날 밤 자정은 다소 먼 시간, 밝은 달이 솟아 빌딩 위로 고개를 삐긋이 내밀었다. 가장 자리 일부가 약간은 이지러진 것으로 보아 음력 보름은 조금 넘긴 날이었을 것 같다. 꽉 찬 만월은 아니지만 계절이 가을인데다가 보기 드물게 맑은 날이어서 달이 밝고 환하다는 느낌이 특별히 덜 하지는 않았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도심 조각 공원의 나뭇가지들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 같았지만 벌어진 손가락으로 눈을 가릴 수 없듯이 그것으로 시야가 가려지지는 않았다. 도리어 환한 달빛이 밝은 배경이 되어 빌딩과 나뭇가지는 그 윤곽이 더욱 검게 뚜렷하게 보였다. 그렇다고 달빛이 추호라도 빛을 잃는 것도 아니었다.

그 달을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아니 한동안 그저 멍하니 바라다보아졌다. 달은 쑥쑥 솟아올랐다. 빌딩에서 점점 더 허공으로 멀어지며 높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왜 저렇게 바삐 가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달은 잠시도 쉬지를 않는다. 구름이 앞을 지나가거나 말거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갈 길을 부지런히 갈 뿐이다. 구름이 지나감으로써 달은 구름의 서두름만큼이나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달이 내 마음을 훔쳐 갔다. 그래서 그랬을까,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달이 사람 마음을 훔친다? 그것은 아닐 것이므로 내가 달에 스스로 마음을 주어 버린 것이 맞을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밝은 달에 정신이 팔려버린 것이 틀림없다. 1968년 미국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Neil Alden Amstrong)이 신비의 달에 인간의 속된 발자국을 남겼을지라도 달의 신비는 전연 짓밟힌 것이 없는 것 같다. 술과 달의 시인 이태백은 강물에 잠겨 환하게 비추이는 달을 품에 안으려 물에 뛰어 들었다. 그 때 이태백을 홀린 그 달의 신비나 지금 이 순간, 이 조각공원의 나뭇가지에 아른거리는 달의 신비가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닐 암스트롱은 달의 고요의 바다라는 곳에 인류사에 길이 남을 첫 발을 디디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간 전체로는 거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그는 가슴이 거세게 뛰면서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정말이지 38만㎞ 거리의 무중력 허공을 날아, 어렸을 때 토끼가 쿵덕 쿵덕 방아를 찧고, 도끼로 찍어낼 계수나무가 있는 것으로만 알았던 달에 최초의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업적임이 분명하다. 아마 인간의 이 겁 없는 도전에 신도 놀라지 않았을까. 하긴 전지전능한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이미 이 같은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했으며 그 같은 도전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암스트롱의 말은 멋지다. 그의 말처럼 달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감격에 겨운 나머지 갑자기 떠올랐던 말이든, 달에 가기 전에 미리 준비했던 말이든 간에 참 멋진 말인 것은 틀림없다. 미리 준비했다손 치더라도 멋진 것은 멋진 것이지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암스트롱의 말이 감동을 안겨주는 것과는 달리 그의 ‘족적’이 달의 신비와 불가사의를 벗긴 것은 없다. 그는 달에 가서 피상적인 지식 몇 가지는 주워올 수 있었지만 그가 떠안고 온 의문들은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를 본격적인 의문의 늪으로 더 깊이 밀어 넣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우주는 팽창 중이다. 다시 수축되는 일 없이 영원히 팽창만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마치 그와 같이 인류의 탐구 열의가 식지 않는 한 지식의 팽창도 계속될 것 같지만 그 지식은 우주의 탄생과 신비의 수수께끼를 시원하게 풀어 헤쳐 놓기보다는 영원히 의문만을 더 키워놓게 될지도 모른다. 인류는 사실 자신이 디디고 숨을 쉬며 그것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우주 전체로 보아서는 한 톨의 모래알보다도 작은 지구의 신비조차 만족하게 벗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낮 동안 어지럽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는지 달은 원래 눈에 띄던 위치에서 상당 거리를 이동해 바로 머리 위에 와있었다. 달은 더 밝아졌다. 그 달빛이 조각 공원에 쏟아지고 있었다. 저 달빛이 지구에서 반사해주는 햇빛 바로 그것이라지? 그 햇빛을 받아 달은 다시 지구로 그 빛을 쏘아준다. 그러니까 지구는 달보다는 더 큰 우주거울이고 달은 지구를 도는 작은 위성 우주 거울이다. 해가 있으므로 지구가 있고 달이 있지만 지구와 달은 서로에게 피차 가장 가까운 특별한 이웃별이다.

따라서 저 달이 왜 생겼는지는 몰라도 사람에게도 달은 특별한 존재다. 달은 지구의 그림자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떴다 지고, 떴다 지고를 되풀이 한다. 그러는 동안 사람은 나고 늙고 죽어가기를 반복한다. 달은 영원하지만 사람은 이 조각 공원에서 목청이 찢어져라 울어대는 저 풀벌레의 목숨처럼 유한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달은 항상 사람의 마음과 교감한다. 달을 쳐다보면 그 표정에서 자기 자신 스스로도 잘 알 수 없는 스스로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달이 무슨 감정이 있어 표정을 짓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사람 마음의 작용일 것이지만 그 같은 사람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달의 신비다. 위로 받을 일이 있는 사람은 달을 보면 위로를 받는다. 마음이 어둡거나 답답할 때는 달은 그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보고 싶은 사람, 안부가 궁금한 사람이 있을 때는 달은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이 돼준다. 어디다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속 터지는 일이 있을 때도 달은 거리낌 없이 그것을 털어놓게 한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얘기를 할 때도 달은 분위기를 잡아준다. 이태백 시인처럼 달은 술벗도 해준다. 그래서 태백은 ‘가을 밤 밝은 달(秋夜 明月)은 내 사랑’이라고 읊었고 술잔을 들고 달을 맞았다(거배요명월/擧杯邀明月). 안중근 의사는 ‘눈앞의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나라의 위기를 보았을 때는 목숨을 던져라(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라고 했다. 그 같은 안중근 의사와 같은 우국지사들의 다짐도 달은 새겨 들어주었을 법하다.

달은 어느새 중천을 지나 내 나이처럼 이우는 길에 들어섰다. 오늘 저 달을 왜 멍하니 바라보았나. 내 마음속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 속 터지는 일이 있나? 한(恨)이 있나? 인적 끊긴 조각공원을 나서면서 그 달과 조각공원이 자꾸 되돌아봐졌다. 어지럽던 마음도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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