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익 정치평론가

같은 혐의로 전국에서 기소된 510명 가운데 유죄 확정판결은 11명이 있고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도 있다. 재판의 진행과 결과는 법에 따라 엄정해야 한다. 판사의 성향이나 편견으로 판결이 돼서는 안 된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의미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판단하고 판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재판장의 양심이 다수 국민의 양심에 반하면 그것은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고 볼 수 없다.
재판부는 무죄 사유로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 경선의 경우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거나 선거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공직선거에서의 보통, 직접, 평등, 비밀 투표라는 4대 원칙이 그대로 준수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재판부는 또 “당시 대리투표를 가족·친척·동료 등 일정한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뤄져 ‘위임에 따른 통상적인 수준의 대리투표’에 해당한다”며 “당시 통합진보당이 대리투표 가능성을 알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대리투표를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말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 대리투표를 사후에 알고 당내에서 무효를 선언하고 부정선거에 대해서 항의하고 고소를 제기한 다수 당원들의 결정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당시 진보신당파, 국민 참여당파가 통합진보당에 참여하고 있었고 이들 양 세력이 부정선거와 선거무효를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귀를 막은 처사이다.
대한민국의 어떤 선거가 대리투표를 인정하고 있는지 재판부는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 당내선거는 대리투표를 해도 된다는 기가 막힌 판결이라고 본다. 재판부는 대리투표가 가족이나 친척, 동료들과 같은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다는 새로운 투표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재판부의 인식에 따르면 1인 2표나 그 이상의 투표권도 한 사람이 행사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재판부는 이 판결로 인해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단체의 선거에 있어 대리투표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에 용인하겠다는 말인지 묻고자 한다. 학급의 반장선거에 이웃 반 친구들이 와서 대리로 투표해도 되는 것이고 어느 조합의 조합장 선거에서 조합원의 자녀가 와서 대리로 투표를 해도 인정할 것인지 송경근 판사는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선거의 상식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당에서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은 상식의 궤를 벗어난 것이다. 중대한 당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결정하는 선거에서 조직적이고 은밀한 대리투표가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통상적인 수준’으로 판결한 법원의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에서 대구지법과 광주지법은 유죄를 선고했다. 또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에서도 같은 이유로 진행한 항소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했고 피고인의 대법원 상고포기로 형을 확정한 바가 있다. 대구지법과 광주지법은 “헌법에 규정된 선거의 원칙은 선거제도를 지배하는 기본원리로 선거 전반에 걸쳐 적용되기 때문에 대리투표 행위는 대의민주주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라고 규정하고 유죄선고를 했다.
선거 절차는 헌법에 규정된 선거전반에 적용되는 것으로 대리투표는 대의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모든 선거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의 4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선거방식이고 역사적으로 진화해서 현대에 확립된 선거의 원칙이다. 금번 중앙지법의 판결에 관여한 판사들은 국민의 법의 적용과 국민들의 법 감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앞으로 항고심이 열리겠지만 이번 판결을 주도한 판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진 것에 대해서 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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