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그 같은 측면에서 스텔스 기능이 미약한 F-15SE가 단독 후보가 됐을 때 국민들의 실망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보 공백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것이든 저것이든 빨리 기종이 선종돼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전투기들이 노후와 되어 도태를 진행해야 된다는 얘기들이 공공연하게 들리는 상황이었으므로 전투기 기종 선정이 자꾸만 늦어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조바심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스텔스기가 절실해 F-15SE를 탈락시켰으면 그 취지에 맞게 빨리 사업을 재개해 안보 공백과 국민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8조 3천억 원으로 책정된 예산이 적어 우리가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스텔스기인 미국의 F-35기 60대를 다 들여올 수 없다면 예산을 더 늘리든지 도입대수를 줄이든지 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스텔스기의 도입대수를 줄이는 것은 궁여지책이지만 스텔스기가 아니더라도 결코 무용(無用)한 것은 아니므로 당초 후보 기종으로 고려되었던 유로파이터 또는 F-15SE와 혼합 구매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야당까지 나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서라도 FX 사업의 원활한 이행을 촉구하고 있는 마당이므로 가장 중요한 사업 진행의 분위기는 잡힌 셈 아닌가. 만약 F-35 스텔스기를 도입하게 된다면 이는 우리의 전투기 도입 사상 가장 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는 이례적인 기록이 된다. 그동안 우리가 도입해온 미제 전투기는 정작 그들은 슬슬 도태해 나가려 할 때의 한두 세대 뒤진 것들 아니었나.
스텔스기가 만능이니 아니니 하는 의논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 주요 나라들은 곧 스텔스기를 운용하게 된다. 소련과 중국은 스텔스기를 시험비행하고 있으며 일본도 F-35를 도입키로 했다. 이들이 스텔스기를 운용할 때 우리만 구식 비행기에 의존해 영공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 스텔스기는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 가장 첨단의 전투기이며 그것의 추구는 최신의 흐름이며 유행이다. 스텔스기를 잡아내는 레이더가 연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레이더가 실전에 배치됐을 때 스텔스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라는 말은 방패가 있으므로 창이 필요 없다는 말과 같다. 마찬가지로 대공 미사일이 있으므로 전투기가 무용하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억지인가.
우리의 안보 수요는 아랍 세계에서 사면초가의 처지인 이스라엘의 그것에 결코 못지않다. 한반도 주변의 주요 나라들은 모두 군사 강국들이다. 그나마 이들은 하나 같이 영토 야욕이 강하다. 또한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북한이 있다. 이 같이 특수하고도 민감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군사적 대비와 정보력이 국민이 안심할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사는 법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들의 철저한 대비 태세, 유비무환의 군사적 대비와 미국 CIA를 능가하는 첩보 역량, 결기에 찬 국민들의 안보 의식을 배워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몇 해인가를 질질 끌어온 FX 사업은 우리의 안보의식과 생존의지의 이완성(弛緩性)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으므로 안타깝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산의 한계에 쩔쩔매는 것을 보고도 예산 당국과 국회는 구경만 한 것이 아닌가. 8조 3천억 원의 예산을 염출할 수 있는 나라에서 1조 7천억 원쯤 더 얹어 10조 원 만들어내는 일은 정녕 불가능했던가. 전투기는 낡아가 국민들 사이에 안보 불안 심리가 일고 그런 전투기를 몰아야 하는 조종사들의 생명이 위태로진다면 마땅히 시간을 재촉했어야지 결코 한가롭게 진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너무 한가로웠다는 것을 솔직하고도 뼈아프게 자성(自省)해야 할 때 같다. 이제라도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할 수 있으려면 국민들의 열망을 수렴하는 효과적인 영공 방어 수단과 방법이 강구되어 서둘러 사업을 완결해야 한다. 스텔스기의 도입 필요성은 이구동성의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 아닌가.
대형 무기 구매 사업은 무기상들의 치열한 상혼(商魂)이 춤추는 영역이다. 로비스트와 에이전트를 앞세운 그들의 비즈니스 활동은 노출되지 않는 지하 경제의 세계와 유사하다. 두 말할 것 없이 사업 주체는 이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사업 진행과정의 투명성이 항시 국민들에게 시현(示顯)되는 것이 중요하다.
무기 제조업체들과 무기상들을 대하는 협상과 교섭은 전문적인 실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가격 협상에서 바가지를 안 써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스텔스기의 도입과 함께 최대한의 기술 이전을 받아 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도 그들이 파는 최첨단 전투기 생산국의 부러운 위상을 지향해갈 수 있을 때 국민들로부터 더욱 환영받는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방위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이 같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우는데 무기 구매 사업이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금상첨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