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반란을 일으킨 제나라 왕을 치기 위해 장군 관영을 파견했으나 한나라 궁중의 여씨 일파 여녹과 여산은 내심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관영이 배신이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들은 관영이 제나라를 공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어린 황제의 이복동생인 제천왕 태, 회양왕 무, 상산왕 조 등과 여후의 외손인 노원왕은 모두 나이가 어렸으므로 영지에는 부임하지 않은 채 장안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여씨 측이었으므로 유씨 측의 열후와 대신도 내심으로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강후 주발이 태위에 있었지만 궁중에 들어가 직접 지휘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고조의 옛 신하인 곡주후 역상은 늙었으나 그의 아들 역기가 평소에 여녹과 사이가 좋게 지냈다. 주발은 그 점을 생각하여 즉시 승상 진평과 논의했다. 역상을 인질로 잡고 그의 아들 역기를 이용하여 여녹을 함정에 빠뜨리자는 것이다.

진평의 계략에 의하여 역기는 여녹을 찾아가 만났다.

“고조가 여후와 더불어 천하를 통일한 후 유씨 문중에서는 아홉 사람, 여씨 문중에서는 세 사람의 왕이 나왔습니다. 이는 모두가 중신들과 합의에 의한 것으로 그 뜻을 모든 제후들에게 알리고 제후들도 이를 승인했습니다. 지금 태후는 돌아가시고 황제는 어리십니다. 이와 같은 때 귀하는 조나라 왕이면서도 영지에 부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두머리 장군의 자리를 차지한 채 군부를 손에 넣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중신과 제후들에게 공연한 소리를 들어도 하는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귀하는 장군직을 버리고 군대를 태위에게 맡기지 않습니까? 양왕에게도 상국의 인수를 반환하고 중신들과 서약하여 영지에 부임토록 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제나라의 반란도 수습될 것이고 중신들 또한 마음을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공도 마음 편히 조나라의 왕으로 계실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만세의 이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녹은 그의 말이 옳음을 깨닫고 장군의 인수를 반환하여 군대를 태위의 지휘 아래 두도록 즉시 사신을 보내어 여산을 위시한 장로들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찬반이 반반씩이어서 좀처럼 결정이 되지 않았다.

여녹은 역기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때마침 그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그 도중에 숙모인 여수의 집에 들르니 여수가 호통을 쳤다.

“장군인 주제에 군대를 버리다니 대체 어쩔 셈이냐? 우리집안은 이제 망했구나.” 한탄을 한 뒤 여수는 모든 패물을 끄집어내어 마당에 팽개쳤다. “어차피 빼앗길 것인데 이렇게 버리는 게 훨씬 낫다.”

8월 갑진날 아침 어사대부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던 평양후 줄은 상국 여산을 만나 정무를 상의하고 있었다. 그때 제나라 사신으로 갔던 낭중령인 가수가 돌아와 여산을 보자마자 나무랐다.

“왜 빨리 영지로 가지 않으셨소? 이제는 때가 늦었소. 다시는 돌아갈 나라가 없소이다.”

가수는 관영이 제, 초와 연합하여 여씨 일족의 토벌을 음모하고 있는 사정을 상세히 보고하고 빨리 궁중을 손에 넣으라고 여산에게 독촉했다.

곁에서 그 보고를 엿들은 평양후는 즉시 승상 진평과 태위 주발에게 달려갔다.

평양후의 말을 들은 주발이 서둘러 북군 사령부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보초가 이를 막았다. 그러나 부절 관리자인 양평후 통이 부하에게 부절을 건네주고 황제의 명령이라고 속여서 태위 주발을 북군에 들어가게 했다. 태위는 다시 역기를 불러 전객(제후의 감시역)인 유계와 함께 우선 여녹에게 보냈다.

유계가 여녹에게 말했다. “황제는 태위에게 북군의 지휘를 명령하시고 귀공에게는 영지로 돌아가도록 바라고 계시오. 지금 장군의 인수를 반환하고 출발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지고 말거요.” 여녹은 그것이 진평과 주발의 계략이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인수를 유계에게 넘겼다.

태위 주발은 사령관으로서 군문에 들어가 장병들에게 명령했다. “여씨를 따르는 자는 바른 쪽 어깨를 벗으라. 그리고 유씨를 따르는 자는 왼쪽을 벗으라.”

그 말이 떨어지자 장병들은 모두 왼쪽 어깨를 벗고 유씨 측에 붙었다. 주발 태위가 북군 군영에 도착했을 때 여녹은 이미 상장군의 인수를 내놓고 사라진 뒤였다. 태위는 북군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러나 아직 남군은 여씨의 측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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