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김일녀 기자]산업은행과 한국정책금융공사(정금공)가 4년 만에 재통합 됨에 따른 효과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27일 산업은행 민영화를 전면 백지화하고 4년 전 분리했던 산은과 정금공을 다시 합쳐 대내 정책금융 기능을 단일화하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다.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기관이 분산되고 기능이 중복돼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9년 산은을 세계적인 IB(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며, 산은과 정금공으로 분리했다. 산은을 민영화하는 대신 정책금융 업무는 정금공에 맡긴다는 게 주요 복안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산은 민영화는 더디게 진척됐다. 게다가 새 정부 들어 정책금융 역할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레 산은 민영화는 무산됐고, 정금공의 필요성도 없어졌다.
‘산은 재통합’에 대해 정금공 측은 “산은과의 통합으로 기능 중복 해소라는 순기능보다 정책금융 역량 훼손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 감소, 시장마찰 재현 등의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직접대출 위주의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산은과 정금공이 통합할 경우, 중소기업 지원 역량이 감소하는 등 순수 정책금융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금공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중소기업 대출 추이를 볼 때 공사 온렌딩(on-lending, 공사가 민간 은행에 중소기업 대출 자금을 빌려 주면 민간 은행이 심사를 거쳐 지원 대상 기업을 골라 대출해 주는 제도)이 중소기업 대출잔액 증가(17조 9000억 원)의 40%를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금공의 중소기업 여신잔액은 2010년 3조 4000억 원, 2011년 6조 8000억 원, 2012년 8조 9000억 원으로 지속 증가했다. 올해 6월 말까지의 잔액도 10조 4000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산은의 최근 3년간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2009년 14조 원에서 2012년 15조 원으로 1조 원으로, 7.3% 증가율을 보였다. 이 중 6000억 원이 온렌딩(중소기업 간접대출)으로 순증분은 4000억 원에 불과하다는 게 정금공 측의 설명이다. 반면 대기업 대출은 같은 기간 36조 1000억 원에서 54조 1000억 원으로 18조 원(50%)이나 증가했다.
이에 대해 성기영 산은 기획관리부문 부행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가진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 확정에 따른 입장과 후속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금공 조직이 통합되고 IB 부문이 강한 산은의 역량이 합쳐지면 중소·중견기업에 토탈금융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합시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하락 등 건전성 악화 우려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산은은 통합시 BIS비율 하락폭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통합 전 14.4%인 산업은행의 BIS비율은 통합 후 13.7%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연말 자율협약을 진행 중인 STX그룹의 여신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하고, 대우건설의 손상 차손을 반영하더라도 BIS 비율은 12.9%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반해 정금공 측은 지난 6월 말 기준 산은의 BIS비율은 13.5%며 통합 후 이 비율은 약 1.6%p 하락, 11%대로 내려간다고 지적했다. 정금공 관계자는 “산은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해 운영 중인 일부 기업이 부실화될 경우 BIS비율은 8~9% 이하로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산은이 주채권 은행인 대기업 계열로는 STX 외에도 한진, 금호아시아나, 동국제강, 동부,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한진중공업 등 건설·조선·해운업이 주를 이룬다.
아울러 정금공 소유의 무수익 공기업 주식 15조 5000억 원을 산은이 다시 보유하게 되면 매년 6000억 원의 구조적 손실 부담도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금공은 또 통합시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을 우려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금공의 조직규모는 지난 2009년 말 100명도 안 됐지만 지금은 418명으로 4배나 늘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정금공과 통합하더라도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규직은 물론 계약직 전원을 승계하고 근로조건 역시 이어받되, 양 기관 간 차이가 있는 부분은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2017년까지 매년 채용 인원을 당초 연 100명 내외에서 70명 내외로 줄일 계획이다.
정금공 측은 “물리적 통합보다는 현 정책금융체제를 유지해 공사는 중소·중견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순수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을, 산은은 IPO(기업공개)를 추진하면서 기업은행과 마찬가지로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을 각각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