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에 발간된 강상중·현무암의 저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가 때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 강상중은 재일동포 2세로서,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서는 최초로 1998년에 도쿄대학 정교수가 된 보수적 인물이다. 일본의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냉정한 분석과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일본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인기가 높다.

그가 ‘흥망의 세계사(興亡の 世界史)’ 시리즈를 한국어로 펴낸 이 책에 대해 교보문고의 소개에서 “만주국이 낳은 요괴와 독재자, 두 인물의 발자취를 추적하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해방 후 한국과 전후 일본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군인 정치가와 관료 정치가를 통해 만주국의 역사와 그 유산”을 밝히고 있다. 만주국은 일본이 1932년 3월 중국에 세운 나라로 2차세계대전 종전 시까지 15년간 유지됐던 제국인데, 그 만주국이 훗날 한일 정치가의 두 거목을 잉태시킨 배경과 영향을 담고 있다고 책에서 전한다.

그 책에서는 ‘귀태’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제국의 귀태들(제1장), 만주가 낳은 귀태들(제2장), 만주제국과 제국의 귀태들(제3장), 되살아나는 귀태들(제4장) 등이다. 저자는 박정희와 기시 두 사람을 작가 시바 료타로의 조어를 빌려 ‘제국주의의 귀태(鬼胎)’라고 표현한다. ‘귀태(鬼胎)’는 융모막 조직이 포도송이 모양으로 이상 증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의학용어지만, ‘태어나서는 안 될’ ‘불길한’ 같은 부정적 뉘앙스가 들어간 말이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기자브리핑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을 인용하여 귀태란 말을 확대 사용해 청와대 등 여권이 뒤집혀졌다. 여권에서는 ‘정통성을 부정하는 폭언이고 망언’이라고 비난했고, 홍 대변인은 그 직을 사임했다. 귀태는 홍 전 대변인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발간된 책에 담겨진 내용이다. 이를 빌미로 여야가 엉뚱한 시빗거리로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것 자체가 구태의 단면이다. 구태야말로 태어나지 말아야 할 귀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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