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평소 젠틀하기로 소문난 민주당 김영환 의원이 며칠 전 작심하고 쓴소리를 했다. NLL 논란과 관련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까지 공개되는 상황을 질타하면서 “막장 드라마 같은 것들이 연출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NLL문제를 들고 나와 평지풍파가 이뤄진 것이 국회를 파행으로 가게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NLL 논란이 불거지더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6월 임시국회’ 정국을 강타했다. 거기에 문제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어떤 진중함이나 국가이익을 따지는 치밀함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궤변과 억지 주장에 매몰된 ‘단순 무식한’정쟁에 다름 아니다. ‘막장 정치’라는 것이 그런 것일 게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비극

이제 한바탕 소용돌이는 끝났다지만 아직도 모른다. 더 큰 혈투가 벌어질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기록관에 있는 ‘원본’도 곧 열람을 거쳐 공개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속서도 공개될 것이다. 어쩌면 국가정보원에 있는 녹취파일도 공개될지 모를 일이다. 정말 끝이 없다. 그러나 여야 속사정을 보면 그 셈법이 다르다. 새누리당은 이참에 확실하게 ‘NLL포기 발언’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은 ‘NLL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것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그래서 뭘 얻겠다는 것인가.

정말 ‘원본’이 공개되고, 그 부속서도 공개되고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까지 공개되면 지금까지의 논란이 한순간에 정리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논란은 더 확산되고 일방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주장은 거칠어지고 국론은 더 분열될 것이다. 어쩌면 온 나라가 내 편과 네 편으로 양분돼서 칼끝 대치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따져보면 정략적 셈법이 보인다. 새누리당은 “다 까도 손해 볼 게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익이나 박근혜정부의 국정드라이브 같은 것은 이미 부차적인 문제다. 정략적으로 본다면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미 정국의 중심에 있다. 게다가 엄청난 물량의 보수세력 지지도 받고 있다. 이대로만 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정본이건 녹취파일이건 다 까서 NLL포기 발언이 없어도 큰 문제가 아니다. 지금처럼 ‘사실상의’ NLL포기 발언이라고 주장하면 끝이다. 이미 논리나 진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있다. NLL 정국은 민주당에서 ‘친노 부활’을 촉발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당혁신의 전면에 나선 김한길 대표체제는 존재감조차 찾기 어렵고, 반면에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친노세력이 다시 대치정국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것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야권에서 친노가 부활한다는 것은 곧 민주당 혁신의 동력을 제거하고 동시에 안철수 세력의 영향력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친노와의 싸움이야말로 가장 쉬운 싸움이 아니던가. 그 유혹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친노세력도 마찬가지다. 김한길 대표체제에서 당 혁신의 칼끝을 피해 조용히 있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NLL 논란이 불거지면서 당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재인 의원이 강수를 두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제는 친노 부활을 넘어서 어쩌면 당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 정치는 지금까지 그랬다. 위기 때마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온 것이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 그 판을 깨려는 사람들만 상처투성이로 남는다.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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