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은 지난 약 4개월 동안 중국에 대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분출해 왔으며 중국은 그에 아랑곳없이 금융제재 등 유엔안보리 제재를 착실하게 준수하였다. 이로서 한때는 안보동맹을 중심으로 자아의 경계가 무의미해질 만큼 가까웠던 두 나라 사이에는 태산같은 대립각이 세워졌다. 만약에 이번에 북한이 특사를 제때에 파견하지 않았다면 북-중 간에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북제재 완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즉 당분간 중국은 유엔안보리 결의에 동참하는 대북제재를 호락호락 풀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시진핑 주석은 최룡해를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를 무려 세 차례나 강조하였다. 왜 그랬을까. 얼마 뒤 있을 미-중 정상회담, 또 6월 말 열리게 될 한-중 정상회담에서 뭔가 중국의 역할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작심은 최룡해 특사를 만나는 절차에서부터 드러났다. 즉 시진핑 주석은 그가 도착하기 하루 전인 지난 21일 쓰촨성 지진피해 현장으로 내려갔으며 총리마저 외국순방길에 올랐다. 최룡해는 도착 당일 왕자루이 당 연락부장에게 점심 한 번 얻어먹고 이튿날에는 정치국 상무위원 서열 5위인 류윈산을 만났다. 원래대로라면 상무위원 서열 3위이며 한반도통인 장더장(張德江)을 만났어야 했다.
특히 중국은 최룡해가 귀국하는 24일에도 시 주석과의 접견을 확인하여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룡해는 이날 오전에 잠깐 중앙군사위원회 판창룽 부주석을 만난 것을 빼고는 내내 숙소인 댜오위타이(魡魚臺)에 머물며 오후 3시 넘어서까지 꼼짝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시 주석 면담이 불발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돌았다.
오후 5시 출발 예정이던 북한 고려항공 특별기는 저녁 7시 반으로 연장하며 최룡해 일행을 기다려야 했다. 최룡해가 출국 시 입고 간 군복을 벗고 대신 인민복을 입고 시 주석을 예방한 데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즉 중국 공산당 측이 인민복 착용을 요구하였다는 설이 있다. 중국에는 군인 중 최고 계급이 상장이다. 그
런데 작은 우방의 특사가 차수 견장을 달고 나타나는데 대해 중국 공산당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평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최룡해 일행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겨우 옥수수 몇 만 톤의 선물에 감동하여 눈물이라도 흘렸을까. 아니면 주먹을 불끈 쥐고 “어디 두고 보자”며 또 다시 분노를 표출하였을까. 둘 다 무의미한 짓이다.
한때는 중국보다 경제발전도 앞서 본 적이 있는 북한이 왜 오늘 중국 앞에 이토록 작아졌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중국 공산당이 개혁 개방으로 나아갈 때 북한은 더욱 문을 닫아 매면서 폐쇄와 고립으로 갔고, 중국에서 벌써 5세대 지도자가 등장하였지만 평양에는 김 씨 왕조 그대로이다.
핵무기를 보유하여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북한의 특사가 누리는 지위가 이 정도다. 이것은 오늘날 북한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축소판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중국은 물론 세계의 요구이며 동북아 평화의 핵이다. 만약 이번에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거역한다면 중국은 묵과하지 않을 것 같다.
시진핑은 후진타오가 아니며 장쩌민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북한의 앙탈을 좌시하며 북한의 지정학적 위상을 존중하며 임기를 마무리한 그들과 달리 시진핑 주석은 한-중 관계, 미-중 관계의 돈독한 파워로 반드시 북한에서 핵을 제거할 것이다.
- [고전 속 정치이야기] 방마후포(放馬後炮)
- [논픽션 연재] 평화대통령 한한국 (43)
- [건강칼럼] 코엔자임 큐텐(Coenzyme Q10)의 기능
- [사설] 고용률 70% 목표, 환상 아닌 현실이기를
- [사설] 북한, 진정성 있게 대화 임하라
- [아침평론] 민주당이 국민에게 존재감을 보이려 한다면
- 최룡해 방중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하나
- [속보] 육사 출신 女장교, 총상 입고 사망
- [통일논단] 대남의존도 확보가 이번 대화의 관건이다
- [통일논단] 김정은 위원장, 이참에 내각에 통일성을 만드시죠
- [통일논단] 잊혀진 전쟁의 교훈과 아쉬움
- [통일논단] 베이징이 더욱 멀어진 김정은 제1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