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이맘때면 등장하는 기업들의 ‘유보율’이 언론사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올해는 특히나 10대 재벌그룹 계열 상장사의 유보율이 1441.7%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대기업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유보율(Reserve ratio)은 잉여금(이익잉여금+자본잉여금)을 자본금(납입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잉여금/자본금)이다. 이는 기업 스스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량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부채율이 낮을수록, 유보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안전성이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유보율만 가지고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28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의 10대 그룹 소속 12월 결산법인 69개사의 2012년도 유보율은 1441.7%로 2008년 말(923.9%)보다 무려 517.8%포인트 증가했다. 전체 상장사 656곳의 유보율도 892.6%로 2008년보다 179.7%포인트 높아졌다. 유보율이 2000%를 넘긴 기업도 전체 상장사의 19.3%에 해당하는 127개였고, 유보율이 1만%를 넘는 기업도 10곳에 달했다.

이같이 높은 유보율 수치가 공개되면서 언론들은 일제히 기업들이 내부에 돈을 쌓고만 있지 투자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지적을 쏟아냈다.

하지만 학계나 재계에서는 유보율만을 근거로 기업이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유보율 계산 시 반영되는 잉여금에는 현금뿐 아니라 토지나 공장, 설비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즉 ‘기업이 돈을 쌓아놓고 있다’고 지적할 때는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인데, 잉여금에는 현금과 현금이 아닌 자산이 구분되지 않아 유보율만으로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예년보다 공장과 설비 증설에 투자를 늘린 기업이라 할지라도 유보율에서는 이 금액이 잉여금으로 잡히기 때문에 유보율이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업에 유보율이 올랐으니 현금만 쌓아두지 말고 투자를 늘리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투자한 자금을 다시 투자하라고 말하는 꼴이 된다.

이 같은 논란이 매해 반복돼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여전히 유보율 산출 방식은 그대로 사용, 해마다 논란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산출 방식을 개선해 더 이상 국민과 기업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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