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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묵와고가Ⅰ 여유로운 침묵을 즐기다 

곳곳에 솟은 산과 산 사이의 좁은 계곡. 陜川(합천)이 주는 의미와 땅 모양새가 꼭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면적이 좁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래봬도 경남에서 가장 넓고 서울보다 1.6배 큰 합천(983.47㎢)이다. 어디 면적만 클쏘냐. 해인사와 더불어 영암사터 등을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합천은 경주와 함께 잘 나가던 고장이었던 게 틀림없다. 천 년 전의 기품을 고스란히 간직한 합천으로 떠났다.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자목련 잎이 움트기 전이다. 아직 가시지 않은 찬바람이 피부에 닿아 지나간다. 합천군 번화가에서도 꼬불꼬불 도로를 타고 30~40분은 족히 가야 나오는 화양마을. 묵와고가는 화양마을 달윤산 끝자락에 놓였다.

묵와(黙窩), 곧 잠잠한 집이다. 한때 100여 칸이나 되는 규모로 대대손손 베풂의 미덕을 몸소 실천했다. 길손이 잠시 머물고 싶다고 하면 귀천을 따지지 않고 정성껏 모셨다. 사랑채와 이어진 누마루에선 시 읊는 소리가 났다. 이름과 달리 정다운 소리가 나는 집이었다.

그러나 파평 윤씨가 외진 마을에 터를 잡은 사연을 들으면 왜 ‘묵와’인지 알 듯싶다. 수양대군이 벌이는 일을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윤장. 그는 김종서의 처삼촌이다. 시끄러운 세상을 등지고 화양마을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화양마을은 화를 피하고 몸을 의탁하는 데도 탁월하지만 산세와 지기가 두루 모여든 평안한 명당인 듯하다.

지금의 묵와는 인조가 치리하던 시절 선전관을 지낸 윤사성이 지은 집이다. 집안이 번성했을 땐 8채, 100여 칸이 들어섰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현재 묵와고가에서 생활하는 황정아 씨의 말에 따르면 가세가 기운 건 일제강점기의 때다.

묵와고가는 휜 나무를 그대로 써 자연이 주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솟을대문에서도 볼 수 있는 휜 나무로 들어가는 이는 그 넉넉함에 마음까지 여유로워진다. 아마도 560년 된 터줏대감의 넉넉함과 아늑함이 동시에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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