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0일 미국 뉴욕의 매장에서 한 남성이 쇼핑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1년 12월 10일 미국 뉴욕의 매장에서 한 남성이 쇼핑을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국 소비자 물가 고공행진

작년 12월 소비자물가 7%↑

연준, 긴축 통화 정책 나서

 

대유행 속 공급 병목이 초래

장기적 요인 ‘탈세계화’ 지목

“바이든, 보호무역 더 강화해”

 

몇 달 내 정점 찍고 끝날 수도

오미크론·인력난 해결 관건

[천지일보=이솜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약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부는 12일(현지시간) 작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7.0%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82년 이후 최대 상승 폭으로, 3개월 연속 인플레이션이 6%를 초과한 것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5% 상승했다. 이는 이전 달인 작년 11월(4.9%) 보다 큰 상승폭이며 1991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추적하기 위한 주요 측정 기준을 CPI와 개인소비지출(PCE)로 사용하는데 PCE 역시 작년 11월 5.7% 상승하며 두 가지 모두 약 4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몇 달 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백악관 관계자들은 대유행의 시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이 경험하는 현실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이들은 인플레이션이 작년 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지속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에 통화 공급을 통제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업무를 맡은 연준은 통화 긴축으로 기어를 바꿔 공격적인 정책을 펼칠 예정이다. 연준은 올해 상반기에 테이퍼링으로 알려진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풀고 있으며 올해 내내 세 차례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다.

◆전염병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란 물가가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오르는 경제 현상이다.

여기서 ‘광범위’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어떤 특정한 상품이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어 가격이 오르는 변동이 아닌 소비자가 구매하는 사실상 모든 물건의 평균 가격이 오를 때 발생하는 것이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음식, 집, 자동차, 옷, 장난감 등의 필수품들의 가격이 오를 땐 임금도 상승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비자물가가 이 같은 상승폭을 기록한 것은 1982년 6월이지만 상황은 오늘과 매우 다르다고 분석했다. 당시에는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던 시기였으나 오늘날은 인플레이션이 오르는 시기라는 설명이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대유행을 배경으로 하지만 복합적인 원인이 불러 일으켰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전 세계의 공장, 식당, 항공사는 문을 닫았다. 많은 사업들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면서 수백만명이 해고됐다.

역사상 가장 급격한 경기 위축에 연준은 긴급 부양책을 시행했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0에 가깝게 인하했고 은행은 기업의 부채를 사들이면서 매달 수백억 달러를 시장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의회와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인 1조 9천억 달러의 경기부양 법안을 통과시켰고 사람들은 다시 쇼핑에 나섰다. CNN은 “지난 20개월 동안 이러한 손쉬운 금융 정책을 유지하는 것 또한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부양정책에 소비자들의 수요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지만 아직 대유행 가운데 있는 공장들은 이들의 욕구를 채울만한 공급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공급망 병목 현상’이라고 한다. 대유행 기간 공장들은 모든 신중한 작업들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직원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높은 수요 + 제한된 공급 = 보통의 가격의 상승이라면 지금은 높은 수요 + 제한된 공급 + 생산 지연 = 훨씬 더 큰 가격의 상승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 셈이다.

[워싱턴=AP/뉴시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1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1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더 지독해진 ‘아메리카 퍼스트’

이 같은 배경 가운데 WSJ는 미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요인으로 ‘탈세계화’를 꼽았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세계화가 물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됐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무역관세장벽이 낮아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저렴한 수입품과 경쟁하게 되고 기술과 무역 자유화로 기업들은 임금이 저렴한 국가로 생산을 위탁하며 관대한 이민 정책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더 부유한 나라로 이주하도록 장려했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미 물가 하락에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MIT대학교 크리스틴 포브스 경제학교수와 노틀램대학교 로버트 존슨 경제학교수, 다트머스대 디에고 코민 교수 등은 세계화 요인이 소비자물가지수 하락에 미치는 영향이 있으며 최근 이 영향이 줄고 있다고 밝혔다.

탈세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투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등으로 추진력을 얻었다. 공급망 병목현상은 결국 완화되겠으나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미국 상품 우선 구매) 정책, 보호무역주의, 생산지 미국 이전, 침체된 이민자 유입 등과 같은 다른 세계화 후퇴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WSJ는 지적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경제학자 개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는 “바이든은 트럼프의 무역정책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국산 원자재 사용,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회사 친노조 정책 등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정책들로 인플레이션이 0.5%p 더 오른 것으로 평가했다.

◆인플레 완화 전망 속 변수 많아

경제학자들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병목현상이 해소되고 수요가 정상화됨에 따라 올해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KPMG 수석 경제분석가 콘스탄스 헌터는 WSJ에 올 상반기 수요가 줄면서 물가 상승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사람들이 대유행 기간 저축했던 돈을 다 써버리고, 바라건대 오미크론을 지나쳐 가면서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오랫동안 크게 갈 지는 전 세계 수많은 변수에 달려있다. 먼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는 전염병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오미크론의 전염성은 직장 결근을 부추겨 노동력 부족을 악화시켰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1일 의회 청문회에서 공급망 문제가 올해 완화돼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도 미국의 인력난이 인플레이션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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