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문화를 그리스도의 문화로
기독교인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가 한정되어 있다고들 한다. 어쩌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문화에 비하면 그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문화의 희소성만큼 완성도 높은 기독교문화 또한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70년 영국에서 팀 라이스와 앤드류 웨버 콤비가 만든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Superstar)’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록오페라다.
이 오페라를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라 불리는 육완순이 1973년 현대무용극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렇게 한국 무대에 첫 선을 보인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는 34년의 장구한 세월을 흐르면서 총 260여 회의 공연과 관객 수 60만여 명을 기록하고 있다.
1973년 초연된 육완순 안무의 무용극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가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성화 지원대상작으로 뽑혀 지난 17일과 18일 양일간 서울 열린극장 창동무대에 올랐다.
3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 무용극 또한 세월의 흐름을 타고 그 시대상에 맞게 안무의 변화도 가져왔다. 물론 붙잡을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각 역할을 담당하는 무용수들 또한 많은 이들이 오고갔다.
창동 열린극장에서의 첫 공연이 있던 날 무대 뒤에서 육완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각 시대에 맞게, 지금의 관객들이 원하는 모습을 찾아 새롭게 변화를 주는 것 또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현대무용이라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육완순이 보여주는 세상은 낯설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려낸 내용이기에 대사가 없이도 몸의 언어로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익숙한 내용일지라도 음악이나 조명, 스토리 전개 그리고 안무가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관객은 피부로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에 안무를 맡은 세 명의 안무가들 또한 예전에 ‘슈퍼스타 예수그리스도’에서 헤롯왕, 유다 등의 역할을 맡아 직접 공연했던 사람들이예요.”
그러기에 무대 위에 펼쳐질 극적인 내용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용이나 음악은 크게 변한 것은 없어요. 다만 앤드류 웨버의 곡에 충실하면서 주역들에 맞게 안무에 변화를 주는 것이죠”라며 현대적 감각을 위해서는 원작의 내용에도 충실해야 함을 살짝 귀띔해줬다.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기 수일 전의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니만큼 성경에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성경공부도 하고, 여러 방면에서 연구도 많이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작품에 쏟는 열정이 느껴진다.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 불리는 종심(從心)이 지난 그에게서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 마음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함께 해서 더욱 빛이 나는
이번 공연에 함께 참여한 음악감독 이문세씨는 유명한 뮤지션이기도 하면서 육완순 선생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문세를 통해 만나게 되는 2000년 전 예수와 예수가 살던 시대는 현대적 감각의 강렬한 비트로 되살아난다.
더욱이 서막을 제외한 예수의 활동상을 표현한 1장, 최후의 만찬과 체포과정, 베드로의 배신을 담은 2장,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표현한 3장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명의 안무가(김원·서병구·김성한)가 자기들만의 색채를 잘 표현해, 한 작품을 보면서도 각기 다른 느낌을 선사받을 수 있는 행운 또한 누릴 수 있다.
관객을 사로잡을 예수역에는 박호빈(댄스시어터 까두 예술감독)이, 막달라 마리아역에는 이윤경(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회장)이 맡아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 또 유다역에 류석훈, 헤롯왕역에 박해준, 빌라도역에 황영근 등 주목받는 무용수들이 출연,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이면서도 화려한, 그러면서도 슬픈 몸짓으로 ‘슈파스타 예수그리스도’를 선보인다.
인터뷰 내내 수고한 젊은 안무가들과 무대 위에서 그리고 무대 뒤에서 땀 흘린 무용수들과 스텝들의 노고에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한국 현대 무용의 꺼지지 않는 등불 육완순 선생.
현대무용에 대한 그의 애착과 노력의 산실이 '슈퍼스타 예수그리스도‘를 34년 동안 한결같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묵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관객들과 함께 자라고 성장해 온 작품은 드물 것이다. 기독교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세월 속에 이렇게 듬직한 작품이 함께 했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 문화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