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2001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8.10.30
보물 제2001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8.10.30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등 4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30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익태 지영록’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등 조선 시대 서책과 불교 조각, 신라 시대 금귀걸이 등 4건에 대해 보물로 지정하고, 보물 제455호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의 명칭은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변경했다.

보물 제2001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한 쌍으로, 외형상 주고리[主環], 중간장식, 마감장식의 삼단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 시대 5~6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접합 부위가 매우 세밀해 눈으로는 잘 확인되지 않을 만큼 세공 기술이 뛰어나고 작은 구슬 장식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또한 입체형인 펜촉형 장식물 안팎으로 작은 금 알갱이를 촘촘하게 부착해 시각적인 화려함도 특징적이다.

보물 제2002호 ‘이익태 지영록(李益泰 知瀛錄)’은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익태(1633~1704)가 1694년(숙종 20년)년 7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래 1696년(숙종 22년) 9월까지 재임기간 중의 업무와 행적, 제주 관련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서문에 의하면 이익태는 제주목사를 역임하면서 알게 된 제주도의 열악한 생활상과 누적된 폐단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참고하기를 바라며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이 책은 제주도의 문화와 지명 등의 연원을 이해하는 데에 실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외국인의 표류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시대 표류민 정책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또한 이미 보물 제652호로 지정된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의 ‘남환박물지(南宦博物誌, (1704년)’보다 8년이나 빠른 것으로, 연대가 가장 앞서는 제주도 최초의 인문지리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보물 제2003호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7세기 전반기에 활발하게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 무염(無染)을 비롯해 총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1649년(인조 27년)에 완성한 불상이다.

높이 67cm의 단아한 규모에 머리에는 연꽃과 불꽃문양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寶冠)을 썼으며, 가사는 두벌 겹쳐 입은(이중착의법) 모습에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렸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고 신체의 자연스러운 양감이 돋보인다.

한편, 보물 제455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慶州 皇吾洞 金製耳飾)’는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와 더불어 신라 시대 장신구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작품으로, 이번 명칭 변경은 보물 제455호가 1966년 일본에서 환수된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임에도 불구하고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로 인식되어 온 것에 대해 바로잡는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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