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곳간, 치약없던 조선시대에도 양치질 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조선시대 나뭇가지 씹어 치아 관리
돼지털 칫솔 비싸서 귀족만 사용

모래· 쑥물·지푸라기로 치아 닦아
개화기 넘어 칫솔·치분·치약 도입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오늘도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친 한 농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가로 가 한 곳에 쪼그리고 앉았다. 뭘 하는가 봤더니, 모래를 만지작거리는 게 아닌가. 농부는 고운 모래를 찾아 손가락에 묻힌 후 치아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문지른 후, 강물로 입을 행군 후 다시 밭에 일하러 갔다.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이쑤시개

치약이 없던 조선시대. 하지만 선조들은 저마다의 지혜로 치아관리를 했다. 고려시대 문헌에 따르면, 양치질은 양지(버드나무 가지)에서 나왔다는 속설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가느다란 버드나무 가지를 꺾은 후 이쑤시개를 만들어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을 뺐다. 이것을 시작으로 양지질이 나중에 이를 뜻하는‘치(齒)’가 들어가 양치질이 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양치질을 ‘수부수’라 부르고, 왕과 양반의 경우 나뭇가지를 씹어 치아에 압력을 단단히 하고 건강한 이와 잇몸을 유지했다.

연산군일기에는 ‘봉상사의 종 송동을 취홍원으로 차송하여 양치질하는 나무를 만들어 바치게 하라’는 글이 담겼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치통이 있으면 버드나무 껍질을 다려서 입에 넣고 양치한 후 뱉어낸다’고 기록돼 있다.

◆소금이나 모래 사용

사실 그 옛날에도 칫솔이 있었긴 했다. 1495년 중국에서 칫솔이 발명돼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당시의 칫솔은 나무에 돼지털을 촘촘히 꽂아 만든 거였다. 하지만 값이 비싸서 귀족만 사용했다.

이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한 것은 ‘소금’이었다. 소금을 이용해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것이다. 조선시대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소금으로 이를 닦고 더운물로 양치를 하면 이에 남은 술독이 제거된다’는 말이 담겨있다.

그러나 소금도 서민에겐 귀했다. 오늘날과 달리 당시에는 가격이 비쌌던 것. 그렇다고 식사 후 양치질을 안 한 게 아니었다. 이들은 주로 강가의 고운 모래를 이용해 이를 닦았다. 또 쑥을 달인 물을 이용해 입 안을 헹구기도 하고, 지푸라기를 이용해 치아를 닦아냈다.

궁녀들의 경우 특별한 재료를 함께 사용했다. 가지를 말려 태운 재를 소금에 섞어 치약으로 쓴 것이다. 또 왕비들은 벚꽃 말린 것을 고운 소금에 섞은 후 양치질을 했다. ‘계설향’이라는 것도 사용했다. 계설향은 정향나무의 꽃봉우리를 말린 약재로, 이것을 입에 머금고 구취(口臭)를 방지했다고 한다.

그러다 개화기 이후에는 서양의 ‘칫솔’과 함께 ‘치분’ ‘치약’ 등이 들어왔다. 이때부터 양치나 양치질의 의미가 달라졌다. 이전처럼 물로 입속을 씻어 내거나, 손가락으로 소금을 묻혀 이를 닦는 게 아니라, 칫솔에 치분이나 치약을 묻힌 후 이를 닦고 물로 행구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칫솔질이 바로 양치질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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