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전략라인 핵심 배치
세대교체·조직개편 병행
해외 실적이 승진 근거로
승계 향후 2~3년 분수령

글로벌 전선에 전진 배치된 식품업계 오너 3세들. 왼쪽부터 이선호 CJ 식품성장추진실장(미래기획그룹장), 신상열 농심 미래사업실장(부사장),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 (출처: 각 사)
글로벌 전선에 전진 배치된 식품업계 오너 3세들. 왼쪽부터 이선호 CJ 식품성장추진실장(미래기획그룹장), 신상열 농심 미래사업실장(부사장),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 (출처: 각 사)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국내 식품·유통기업에서 오너 3·4세들의 승진 시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CJ·농심·삼양식품·SPC 등 ‘식품 빅7’ 후계자들이 30~40대 나이에 전략·미래사업·글로벌 핵심 라인과 대표이사급 자리에 전면 배치되면서 숫자 기반 책임경영을 앞세운 ‘조기승계·세대교체’ 흐름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국내 식품업계에서는 이미 1994년생 전무까지 등장하며 기업마다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내수 시장 정체와 글로벌 사업 확대로 전환기를 맞은 시점에서 세대교체를 통해 오너 3·4세들을 글로벌 사업 최전선에 투입하는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업계 안팎에서는 ‘성과보다 승계가 앞선다’는 비판과 함께 혈연 중심 승계로 인한 폐쇄적 지배구조 우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식품업계 ‘글로벌 전환’에 젊은 리더십 전면 배치

CJ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식품성장추진실장을 지주사 최상위 전략조직인 미래기획그룹장에 임명했다. 미래기획그룹은 그룹 포트폴리오 전략부터 글로벌 투자·신사업·DT 기획까지 총괄하는 사실상의 컨트롤타워다. 이 그룹장은 CJ제일제당에서 ‘비비고’ ‘햇반’ 글로벌 확장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성과를 입증한 뒤 6년 만에 지주사 핵심 라인으로 복귀했다.

농심도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을 내년 1월 1일자로 부사장에 승진시킨다. 2019년 사원 입사 후 6년 만에 임원 직급을 연속 통과한 이례적 속도다. 신 부사장은 신사업·글로벌 전략·M&A를 총괄하며 농심의 ‘비전 2030’을 실무 중심으로 이끌어왔다. 농심은 2030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현재 39%에서 60% 이상으로 높이고 스낵 매출을 7조 3000억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삼양식품은 창업주 3세 전병우 COO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글로벌 히트작 불닭볶음면 프로젝트를 총괄한 그는 해외 매출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리며 회사의 체질을 완전히 글로벌 중심으로 돌려놓은 인물이다. 또한 중국 저장성 자싱 공장 CAPA 확장을 직접 지휘해 생산라인을 6개→8개로 늘렸고 투자 규모도 2014억원에서 2072억원으로 확대했다. 삼양식품 올해 3분기 누적 실적은 매출 1조 7141억원(+37%), 영업이익 3850억원(+49.9%)으로 해외 성장세가 실적을 견인했다.

SPC그룹은 허영인 회장의 장남 허진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차남 허희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승진시키며 형제 투톱 체제를 굳혔다. 허진수 부회장은 파리바게뜨의 북미·동남아 확장을 주도했고 허희수 사장은 배스킨라빈스·던킨 디지털 혁신과 멕시칸 브랜드 ‘치폴레’ 한국·싱가포르 도입을 성사시켰다.

오뚜기에서는 함영준 회장의 장남 함윤식 마케팅실 부장이 입사 4년 만에 부장급으로 빨리 올라섰다. 오리온그룹 역시 담철곤 회장의 장남 담서원 전무가 입사 1년 5개월 만에 상무 이어 2년 만에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는 최근 인수한 리가켐바이오의 이사회에도 합류하며 신성장 전략을 직접 챙기고 있다. 동원그룹 김남정 회장의 장남 김동찬 사원도 원양어선 근무를 마치고 지난 8월 현업에 복귀해 경영 수업에 들어간 상태다.

◆‘전략→해외→지주’ 정형화

     전사 조직개편 맞물린 변화

식품기업 3·4세들의 이동 경로는 경영기획·전략실→해외사업 실무→신사업·M&A→지주사 전략 조직이라는 정형 패턴을 보인다. 이선호 그룹장은 글로벌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뒤 지주사 전략 라인으로 복귀했고 신상열 부사장은 경영기획·구매·미래사업실을 거쳐 핵심 의사결정 라인에 빠르게 진입했다. 전병우 전무 역시 해외사업본부→전략운영본부→COO를 연속 거치며 글로벌 사업 총괄 위치에 올랐다. SPC그룹 형제 또한 글로벌 BU·신사업·디지털 전환 조직 중심으로 승진 경로를 밟았다.

동시에 각 사는 조직개편도 병행한다. CJ는 미래기획그룹 신설과 함께 포트폴리오 전략·미래전략·인재·문화혁신 기능을 재정비했고 농심은 미래사업실 신설과 해외통 대표 선임으로 글로벌 전환을 가속화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그룹 전략 기능을 묶어 ‘불닭’ 중심 글로벌 체제로 전환했고 SPC는 ‘변화와 혁신 추진단’을 출범해 글로벌 BU 재정비에 나섰다.

◆실적 기반 승진 구조로 전환

   “3세·4세 존재감, 해외서 입증”

최근 승진한 오너 3·4세의 공통점은 ‘해외 실적’이다. CJ 이선호 그룹장은 비비고·햇반의 북미·유럽 인지도를 높이고 글로벌 유통망을 정교화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농심 신상열 부사장은 해외 매출 비중 60% 목표를 담은 ‘비전 2030’을 구체화하며 스낵 사업·M&A 전략을 주도했다. 삼양식품 전병우 전무는 불닭볶음면 글로벌 프로젝트로 해외 매출 비중 80% 구조를 완성했고 자싱 공장 CAPA 확장도 추진했다. SPC 허진수·허희수 형제 역시 파리바게뜨 해외 확장과 치폴레 도입 등 글로벌·신사업 성과가 승진 배경으로 꼽힌다.

각 사가 요구하는 미션 역시 명확하다. CJ는 글로벌 투자·신사업 정착, 농심은 해외 매출 60% 달성 및 스낵 사업 글로벌화, 삼양식품은 ‘제2의 불닭’ 육성과 CAPA 확대, SPC는 해외 시장 지배력 강화와 디지털 신사업 성과를 중점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승계 판정 기준 ‘글로벌 실적’

승계의 최종 판정 기준은 ‘글로벌 실적’이다. 초고속 승진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실적 검증의 공백과 해외 투자 실패 가능성, 책임경영 체계 불안 등 구조적 리스크도 따른다. 특히 CAPA 확장과 M&A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향후 2~3년의 성과가 곧 승계 정당성을 평가하는 직접 지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내수 정체와 해외 경쟁 심화 속에서 식품기업의 세대교체가 불가피한 전략 전환이라고 본다. 해외 유학·언어 능력·현지 경험을 갖춘 3·4세는 글로벌 전선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요구와 맞물리지만, 이들이 그룹의 미래를 이끌 수 있을지는 결국 실적이 답을 낸다.

해외 매출 확대, 생산기지 강화, 신사업 안착 등 명확한 지표가 세대교체의 속도와 승계의 정당성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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