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명령 거부권 논란 확산
내란TF 전수조사 불만 가중
공직사회 불신과 냉소 증폭
일각 “군 체계 근본 흔들려”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개정안은 공무원의 복종 의무가 삭제되고, 육아휴직 사용 대상 자녀 나이 기준 상향, 난임치료 위한 휴직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출처: 연합뉴스)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개정안은 공무원의 복종 의무가 삭제되고, 육아휴직 사용 대상 자녀 나이 기준 상향, 난임치료 위한 휴직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정부가 76년간 유지돼 온 국가공무원법상의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손질하는 국가·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상관의 위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법률에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소신 있는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으로 보이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무총리실 ‘헌법존중 정부혁신 총괄 TF’가 벌이고 있는 공무원 전수 조사와 맞물리면서 공직사회에서는 ‘병 주고 약 주기’라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또한 군 복무 체계까지 ‘정당한 명령’ 기준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25일 각각 지방공무원법·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상관의 지시·명령에 대한 공무원의 위치를 ‘복종’에서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꾸고 그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두는 것이다. 또 상관의 위법한 지휘·감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이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당 공무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이나 차별적 대우를 할 수 없도록 명시하는 내용이다.

현행 법은 직무 수행 과정에서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만 규정하고 있을 뿐, 위법한 명령에 대한 예외나 내부적 통제 장치는 별도로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선에서는 “위법한 지시라는 것을 알고도, 인사상 불이익이 두려워 상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이런 비판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1949년 국가공무원법 제정 당시부터 유지돼 온 ‘복종 의무’ 조항을 손질하는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개정안은 국가공무원법 제57조의 ‘복종의 의무’ 표현을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꾸는 한편 구체적 직무 수행과 관련한 상관의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공무원이 의견을 제시하거나 이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제56조의 ‘성실의무’를 ‘법령준수 및 성실의무’로 변경해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공무원이 상사의 위법한 명령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불복할 수 있도록 법률상 규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국민과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직사회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가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권 교체 이후 총리실 주도로 진행 중인 ‘내란 TF’ 활동 때문이다. 총리실은 최근 중앙행정기관 49곳에 ‘헌법존중 정부혁신 총괄 TF’를 공식 출범시키고,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헌·위법 논란이 불거지는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내란 TF는 공무원들에게 개인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해 내란 가담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자발적 제출을 권장한다고 하지만, 의혹이 짙다고 판단되는데도 제출을 거부한 경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계획까지 공개했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의 제보와 투서를 받겠다는 구상도 추진 중이다.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내란 연루 공무원들에 대해 내년 2월 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등 인사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같은 전방위 ‘내란 몰이’ 속에서 공무원들은 사생활·인권 침해는 물론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법 개정 취지대로라면 공무원들이 휴대전화 제출 같은 내란 TF의 위법한 요구를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위법한 명령에 대한 이행 거부권을 법에 명시하겠다는 정부가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상 휴대전화 제출 압박과 제보센터 설치로 공무원 사회를 옥죄고 있다는 역설적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휴대전화 제출은 100% 본인의 동의에 의해 이뤄지며, 동의가 없으면 제출을 요구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포렌식도 하지 않기로 했고, 총리실에서 원칙과 절제를 강조했기 때문에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총리실이 공직사회 반발을 의식해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이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재판을 위한 전담재판부 설치까지 예고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권은 ‘법과 원칙에 따른 조사’라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당장 조사 대상이 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지금 TF 분위기에서 누가 상사의 지시를 ‘위법한 명령’이라고 판단해 거부할 수 있겠느냐”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개정안에는 공무원 근무 여건과 관련한 복지·징계 조항도 담겼다. 육아휴직 대상 자녀의 나이 기준을 기존 8세(초등학교 2학년)에서 12세(초등학교 6학년)까지로 상향하고, 그간 질병휴직으로 처리되던 난임치료를 별도 청원휴직 사유로 신설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허용하도록 했다. 스토킹·음란물 유포 비위에 대한 징계 시효는 3년에서 10년으로 대폭 늘리고, 피해자가 비위 혐의자에 대한 징계 처분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징계 절차도 강화했다. 겉으로는 일·가정 양립과 성 범죄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지만, 정작 공무원들의 체감은 “병 주고 약 주기”라는 말로 압축된다. 위에서 내리는 강도 높은 통제와 조사를 유지한 채, 법 개정과 복지 개선으로 불만을 달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자리한다.

한편 공무원 사회에서 시작된 ‘복종 의무’ 손질 논의는 군대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군에까지 ‘정당한 명령’ 기준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공개 우려를 표했다. 유 의원은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며 “현행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는 군이 군대로 기능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군은 1초의 지연이 생사를 가르는 조직이기에 명령 복종은 조건 없는 ‘즉각적 이행’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며 “그런데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권 소속 의원 10여 명이 이 조항을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도록 개정하고, 국방부마저 이에 사실상 동조하는 정부 의견을 제출했다”고 비판했다. 표면적으로는 국가공무원법 개정 취지와 맞닿아 있지만 ‘정당한 명령’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군 지휘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유 의원은 “겉보기에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 타당해 보일 수 있으나 문제의 본질은 정당한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군 지휘 체계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다는 데 있다”며 “지난 정부의 여당 의원으로서 이런 논의가 등장한 데 일정 부분 책임을 느끼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법 개정은 공무원 사회 전반에 ‘위법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는 진전된 조치이면서도 정권 교체 이후 펼쳐진 강도 높은 내란 조사와 맞물려 진정성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공직사회에서는 “법 조문이 아무리 좋아도, 실제로 위법한 지시를 거부한 공무원에게 승진·보직에서 불이익을 주지 않는 관행이 자리 잡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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