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 상호 방문 합의 발표
트럼프 무역·농산물 성과 강조
中, 美의 대만 문제 공감 발표
대만·희토류·우크라 ‘빅딜’ 신호

[천지일보=이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상호 방문을 포함한 ‘셔틀 외교’가 구체화되며 세계 양강(G2) 관계가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두 정상은 지난달 한국 부산 회담에서 이룬 무역 휴전 합의 이행에 진전을 확인하고 ‘1년짜리 무역 휴전’ 보다 더 큰 거래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시 주석과 전화 통화를 한 후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에 “우리는 우크라이나-러시아, 펜타닐, 대두와 다른 농산물 등 많은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며 “우리는 미국의 위대한 농가들을 위해 좋고 매우 중요한 합의를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제 우리는 큰 그림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됐다”며 내년 4월 베이징 방문 초청을 수락했고 시 주석을 미국 국빈 방문으로 초대했다고 밝혔다.
이번 통화는 관례와 달리 시 주석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시 주석이 전화를 걸어왔고 두 정상은 대만, 우크라이나 전쟁, 부진한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등을 함께 논의했다.
이번 통화와 셔틀 외교 구상을 관통하는 배경에는 양국 지도자의 국내 정치·경제적 필요도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중간선거 국면을 앞두고 농업·제조업 지지층을 다지는 데 중국과의 무역 안정이 절실한 상황이다. 시 주석 역시 부동산 침체와 고용 불안, 수출 부진 등 경제적 압박이 사회 안정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외부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양측 모두 장기 갈등이 자국 내부에 부담이 된다는 계산 아래 일단 관계를 안정시키는 ‘전략적 협력’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완화 신호가 미·중 경쟁의 본질을 흔드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꾸준하다. 두 나라가 경제·안보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구조는 그대로인 만큼 이해 충돌이 다시 표면화될 여지는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내년 예정된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일정 수준의 재정렬이 이뤄질 경우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묵인은 얻은 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더 과감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을 점치는 전망도 제기된다.
◆무역 갈등 완화 기조 속 이행 점검
통화의 주요 초점이었던 무역 협상은 순항 중이다. 부산 회담에서 양측은 관세 인하와 희토류 수출 통제 보류, 그리고 펜타닐 제조 화학물질 단속 협력 등에 합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약속한 미국산 농산물 구매가 아직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브룩 롤린스 미 농무부 장관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10월 1일 이후 미국산 대두 약 150만t을 구매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연말까지 1200만t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아직 갈 길이 상당히 멀다. 그러나 그들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모든 신호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핵심 광물 공급망 안보를 위해 중국과 희토류 관련 최종 합의 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추수감사절까지 중국으로부터 귀중한 희토류 광물의 흐름을 보장하는 합의를 마무리 짓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고급 AI 칩 H200의 대중국 수출 허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은 블룸버그 TV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그가 우리가 이것을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라며 이 문제가 정상 간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음을 시사했다.
◆시진핑 통화 목적은 ‘대만’?
경제·통상 의제 못지않게 이번 통화에서 가장 예민한 주제는 대만이었다. 중국 관영매체와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통화에서 “중국과 미국은 한때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웠으며 이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 뒤, “대만의 중국 귀속은 전후 국제질서의 필수적인 일부”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또 “중국과 미국이 협력하면 모두에 이롭고 싸우면 모두가 다친다는 것은 실천을 통해 반복 증명된 상식”이라며 “협력 리스트를 늘리고 문제 리스트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대만 문제가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한 대목도 주목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공식 브리핑에서 대만을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 “우리의 중국과의 관계는 아주 강하다!”라고만 밝히며 무역과 농산물, 펜타닐 억제 등 경제·실무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독일 마셜 펀드의 대만 전문가 보니 글레이저는 “시 주석이 대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설정하기 위해 이 기회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부산 회담에서 대만이 논의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미중 셔틀 외교의 주요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프레임워크’를 시 주석과 공유했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통화에서 “평화에 도움이 되는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보는 시각과 시 주석이 대만을 바라보는 시각 사이의 유사성이 지적돼왔다면서 시 주석이 전쟁 종식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대만과 관세 문제에서 양보를 요구할 여지를 엿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