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절감·업무 공백 축소
AI 민원 시스템으로 전환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국가공무원들이 집에서 당직 근무를 할 수 있는 길이 전면적으로 열리면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공무원 당직 제도가 대폭 손질된다. 정부는 재택·통합 당직을 확대해 연간 170억 원 안팎의 당직 예산을 줄이고, 사무실 당직 후 휴무로 발생해 온 연 356만 시간 규모의 업무 공백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공무원 복무 규칙' 개정안을 24일부터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공직사회 활력 제고 5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1949년 도입 이후 현실과 괴리가 커진 당직 제도를 현행 근무환경에 맞게 재설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인사처는 국무총리령인 복무규칙 개정 이후 약 3개월 간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4월 전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재택 당직의 전면 확대다. 지금까지는 개별 부처가 재택 당직을 도입하려면 인사혁신처·행정안전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했지만 앞으로는 일정한 보안·경비 요건을 갖춘 기관이라면 자체 판단으로 재택 당직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무인 전자 경비장치나 유인 경비 시스템을 갖춘 기관은 별도 협의 없이 재택 당직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방식이다.
재택 당직자의 사무실 대기 의무 시간도 줄어든다. 현재는 재택 당직을 하더라도 근무 시작 후 2~3시간은 사무실에 머문 뒤 귀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개정안 시행 후에는 최소 1시간만 사무실에 대기한 뒤 귀가해 재택으로 당직을 이어갈 수 있다. 인사처는 이를 통해 야간·휴일에 사무실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밤을 새우는’ 형태의 당직 관행을 완화하면서도 비상 대응 기능은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4시간 상황실을 상시 운영하는 외교부·법무부 등은 별도 일반 당직실을 없애고 상황실 근무자가 당직 임무를 겸하도록 허용된다. 기존에는 상황실과 일반 당직실이 이원화돼 비상 대응 체계가 중복 운영된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상황실 중심의 일원화로 인력·예산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여러 중앙행정기관이 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청사의 경우에는 통합당직 운영이 가능해진다. 그동안은 각 기관이 최소 1명씩 당직자를 배치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청사별로 구성하는 통합당직실에서 1~3명이 여러 기관의 당직을 동시에 맡을 수 있다. 예컨대 8개 기관이 입주한 정부대전청사는 현재 총 8명이 각 기관별로 당직을 서고 있지만 개정안 시행 후에는 최대 3명의 당직 근무자가 8개 기관을 통합 관리하는 구조로 바뀐다. 인사처는 통합 당직 기관들 간 비상연락망을 촘촘히 유지해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 전파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력 여건이 열악한 소규모 기관에 대한 배려도 포함됐다. 소속 인원이 적어 1인당 4주에 1회 이상 당직을 서야 하는 기관의 경우,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아예 일반 당직을 면제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한다. 인사처는 반복적인 당직 투입으로 인한 소수 인력 과부하를 완화해, 낮 시간대 본연의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야간·휴일 전화 민원이 많은 기관을 중심으로는 인공지능(AI) 기반 당직 민원 시스템이 도입된다. AI가 민원 전화를 분류해 일반 민원은 온라인 민원 창구인 국민신문고로, 화재·범죄 관련 신고는 119·112로 자동 연계하고, 해당 기관과 직접 관련된 긴급·중요 민원만 당직자에게 연결하는 방식이다. 인사처는 이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면 야간 근무자의 단순·반복 민원 응대 부담이 줄어드는 동시에, 긴급 상황에 보다 집중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안 점검 업무에 대한 기준도 현실화된다. 그동안 당직자가 야간에 청사를 순회하며 방범·방호·방화 상태를 점검해 온 관행을 ‘필요시’ 실시하는 수준으로 완화하는 대신 청사관리본부와 보안업체가 맡아온 전문적인 방범·방호·방화 점검은 현행대로 유지한다. 정부세종청사 당직총사령실과 정부서울청사·과천청사·대전청사 등에 설치된 당직사령실도 유지해 청사별 당직 운영을 총괄 관리하도록 했다.
재택·통합 당직 확대와 24시간 상황실 운영 기관의 일반 당직 폐지 등이 본격화되면 예산·근무시간 측면에서 상당한 효과가 예상된다. 인사처는 공무원 당직비 상당수가 재택 당직이나 통합 당직으로 전환되는 만큼 연간 169억~178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아울러 연간 약 44만 6000명이 사무실 당직을 선 뒤 휴무를 사용하면서 발생해 온 근무 공백이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연 356만 시간 규모의 근무시간이 추가 확보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개편은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한 국가공무원 당직제도 개편이지만 지방자치단체도 영향을 받는다. 행정안전부는 주민과의 접점이 많은 지자체의 특성을 고려해 각 지자체 여건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당직 유형 모델을 별도로 제시할 계획이다.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비효율적인 당직 제도는 공무원들의 불필요한 업무 부담을 가중하고 공직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며 “실태 조사와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 만큼 공무원들이 업무에 더욱 집중하고, 국민에게 보다 질 높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처는 개정안 입법 예고 과정에서 각 부처와 현장 의견을 추가로 수렴해 세부 운영기준을 보완하겠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