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영토 양보·군 축소 등
트럼프 초안 러시아 작성 논란
미-우크라 제네바서 초안 수정
유럽 국가들 자체 수정안 공개
전선 동결 등 우크라 입장 반영
미-우크라 종전안 논의 계속
“합의안 나오면 러 승인 필요”

[천지일보=이솜 기자]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보완된 평화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초기 초안이 지나치게 러시아에 우호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유럽 국가들이 수정을 요구하며 별도의 대안을 제시한 직후다. 이에 미국·우크라이나·유럽 3축이 각기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동일한 문서를 재구성하게 됐다.
로이터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회담 후 공동 성명을 통해 “논의가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으며 향후 며칠간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어떻게 보장할지 등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수정된 종전안이 “강화된 안보 보장을 포함하며 우크라이나의 국익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을 이끈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기자들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역할 등 미해결 질문들에 대한 작업이 남아 있지만 이번 28개항의 평화안에서 미해결 쟁점들을 좁혔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며 “우리가 아주 합리적인 기간 내 그곳(종전)에 도달할 것이라고 매우 낙관한다”고 말했다.
미·우크라 대표단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초안의 민감한 항목, 특히 영토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논의는 지난주 유출된 미국 측 28개 조항 초안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넘기고 군 규모를 축소하며 나토 가입 포기를 요구한 데서 촉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7일까지 계획에 서명하라”고 요구한 직후 우크라이나와 유럽 전역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미국 초안의 출처를 둘러싼 혼란은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문서가 블라디미르 푸틴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와 트럼프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러시아어로 쓰인 뒤 영어로 번역된 흔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에 대해 “(초안을) 미국이 작성했다”고 반박했다.
루비오 장관은 최종 합의에 도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27일 마감 시한에 대해 유연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이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것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우크라이나 측과 합의에 도달한다면 러시아에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국내외로 진퇴양난
트럼프 종전안에 사전 협의 없이 배제됐다는 데 강한 불만을 표한 유럽 국가들은 이날 미국·우크라이나 공동성명 발표 몇 시간 전 자체 수정안을 공개했다.
유럽안은 정전 후 협상을 시작하되, 출발점은 현재 전선이라고 규정해 미국안에 포함된 ‘선(先) 영토 양보’ 조항을 뒤집었다. 또한 우크라이나군 평시 병력을 80만명으로 제시해 미국안(60만명)보다 크게 상향했다. 나토 가입 제한도 삭제했다. 유럽안은 “회원국 간 컨센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언급하며 가입 배제를 명시하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가 점령 중인 자포리자 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관리하며 전력은 러시아·우크라이나가 50대 50으로 나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럽연합(EU)은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사용하는 방안을 명시해 미국안의 ‘일부를 미국 투자자에게 이관’하는 조항도 거부했다.
유럽판 종전안은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프랑스·독일·영국의 국가안보보좌관들과 사전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지도자들은 주요 20개국(G20)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에서도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대통령은 이날 “누가 이 계획을 만들었고 어디서 작성됐는지 확실히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와의 회담과는 별개로 나토와 EU 관련 조항들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남아공 G20 회의에서 “첫째, 국경은 힘으로 바꿀 수 없다. 둘째, 우크라이나 군사력에 제한이 있어선 안 된다. 셋째, EU의 역할과 이익이 반영돼야 한다”며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유럽 고위 당국자들은 WSJ에 “우리는 젤렌스키를 돕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있다”며 미국 초안의 방향을 “공개적으로는 지지하되 실제로는 수정해나가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에게 위태로운 시점에 이뤄졌다. 러시아는 전선 일부에서 서서히 진격하고 있다. 이날 교통 요충지인 포크로우스크는 부분적으로 러시아군 수중에 들어갔고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은 “소규모 침투를 막을 병력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러시아는 이날 하르키우에 대규모 드론 공격을 감행해 최소 4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은 드론 및 미사일 공격으로 타격을 입어 수백만명이 매일 물, 난방 및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로 국내 압력에 직면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