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다음 달 29일 국내 항공사에서 가장 참담한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전남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맞는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주도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으나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 비행자료 기록장치(FDR) 등 사고 원인을 밝혀줄 객관적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독립성, 중립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179명이나 희생된 항공기 사고이기에 세월호 침몰(299명), 이태원 압사(159명) 참사처럼 국회 국정감사가 진작에 이뤄졌으면 최소한 조사 과정에서의 투명성 논란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안공항 항공기 참사는 새 떼와의 충돌, 공항 설비 부실 등의 우연한 조합으로 빚어진 사고라기보다 국내 공항 건설 및 관리의 총체적 난맥상에서 비롯된 인재로 보인다. 생태 파괴를 아랑곳하지 않는 지역 이기주의도 사고 유발의 큰 몫으로 작용했다. 사업성이 떨어져도 국가균형개발, 지역발전을 명분 삼아 마구잡이로 공항을 개설하고 있어 제2, 제3의 무안 참사가 우려된다. 국내 14개 지방공항 중 김포, 제주, 김해공항을 제외하고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임에도 8개 지방공항을 추가 건설하려 한다. 경기 남부 및 북부 공항 등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되는 공항까지 포함하면 12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대단위 철새 도래지를 보유한 전북 군산 새만금국제공항은 법원에서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받았고, 충남 서산공항은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퇴 논란을 거듭하다 가까스로 수의계약을 통해 공사를 맡기로 한 현대건설이 최근 철수했다. 철새 낙원인 을숙도와 가까워 조류 충돌 위험이 무안공항의 350배에 이르는 등 가덕도는 공항 입지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또 건설 계획이 발표된 지 10년 넘은 제주2공항은 생명 파괴 논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환경부가 당초 “제주2공항은 공항이 들어서기 부적절한 입지”라며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반려했던 곳이다.
지방공항 신설이 이처럼 문제투성이지만 정부나 공항 전문가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러니 1년 전 발생한 무안공항의 참사 의미, 항공 안전의 구조적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회가 뒤늦게나마 무안공항 사고 관련 국정감사에 나선다니 지방공항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면 좋겠다.
필자는 인천국제공항 개항 직후부터 8년간 공항 전담 기자로 활동한 덕에 ‘공항의 품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야 할 공항 건설에 있어 방만한 투자가 금물이란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2001년 문을 연 인천공항이 개항 5년 차에 공항서비스 부문 세계 1위로 등극할 수 있었던 건 공항 운영 전략을 치밀히 펼쳤기 때문이다.
우선 동아시아 허브공항의 입지 여건을 지닌 데다 초기부터 수하물 처리 시스템(BHS), 자동 출입국 시스템, 실시간 항공 교통관리 등 첨단 IT 설비를 바탕으로 최고의 서비스 품질을 선보였다. 수하물 처리 속도, 출입국 수속 편의, 보안시스템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여서 ‘세계에서 기다림이 가장 짧은 공항’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인천공항이 다년간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1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필자는 인도 뉴델리, 포르투갈 포르투 등에서 열린 시상식을 취재한 바 있다.
이런 명성에 힘입어 인천공항 건설은 국고 투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공항 운영수익에서 대거 투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1~4단계 시설 투자에 든 총공사비 18조원 중 1, 2단계 때만 건설 비용의 35~40%인 3조 2800억원이 국고에서 지원됐다. 나머지 15조원가량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수익 자금으로 충당된 것이다. 인천공항 이용객이 꾸준히 늘어 조만간 1억명을 넘어설 상황에 대비해 공사 자력으로 5단계 시설 확충을 서두르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에 반해 10조원 넘게 투입될 가덕도공항 등 지방공항 건설비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또 개항 이후 적자 운영을 거듭하면 끊임없이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 구조다. 지방공항도 인천공항처럼 자력갱생하도록 하면 무분별한 공항 건설 행태가 바뀌지 않을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공항 안전이니 조류 충돌 위험 지역을 건설 예정지에서 배제하는 게 당연한 기본 원칙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