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명분 앞세운 정책 혼선… 소비자·업계 피로감 누적
종이빨대업체 줄도산 위기… “신뢰 붕괴, 피해만 떠안아”
기후부 “시장 영향 충분히 고려 못해”… 뒤늦은 지원책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일회용품 규제가 사실상 멈추면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빠른 속도로 되살아나자 환경 부담과 산업 피해가 동시에 불어나고 있다는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불과 1~2년 사이 정책 시행과 유예를 반복한 결과, 외식업계와 소비자는 다시 플라스틱으로 돌아가고 제조업계는 붕괴 직전으로 내몰리며 시장 전반에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주요 프랜차이즈는 종이빨대 의무화에서 벗어나 플라스틱 빨대 제공을 다시 확대하고 있다. ‘2025 서울카페쇼’에서도 종이빨대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플라스틱 계열 빨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스타벅스가 7년 만에 전국 매장에서 식물 유래 플라스틱 빨대를 제공하기 시작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종이 맛에서 해방됐다’ ‘플라스틱 귀환이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는 인증 게시물이 잇따르며 종이빨대 도입 이후 누적된 불편함이 소비자 반응에 그대로 드러났다.

정책 변화의 급격함도 논란의 핵심으로 지적된다. 지난 2021년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2022년부터 외식업계는 종이빨대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했지만, 정부는 2023년 말 이 조치를 ‘무기한 유예’하며 사실상 규제를 중단했다. 이후 스타벅스는 제주 지역을 제외한 전국 매장에서 사탕수수 기반 ‘식물 유래 플라스틱 빨대’를 도입했고 투썸플레이스·이디야커피·엔젤리너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도 플라스틱·종이를 동시에 제공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환경적 부담과 정책 실효성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주한 용역 보고서에서는 종이빨대가 제작 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목재 원료 가공과 제조 과정에서 오히려 환경부담이 늘 수 있다는 지적이다. 종이빨대의 내구성 문제와 소비자 불만까지 고려하면 ‘불편만 감수한 정책 아니었느냐’는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의 고질적 문제도 여전하다. 플라스틱 빨대는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해 대부분 매립·소각되며 미세플라스틱으로 남는다. 길이 20cm 내외의 빨대는 바다거북·바닷새·바다표범 등 해양생물이 먹이로 착각하기 쉬워 국제환경단체는 이를 ‘해양 쓰레기 발생 상위 품목’으로 분류한다. 분해까지는 최대 500년이 걸린다고도 지적한다.
국제 기준과의 괴리도 도마에 올랐다. EU는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를 의무화하고 플라스틱 부담금까지 도입하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보증금제 철회와 종이빨대 의무화 후퇴가 이어져 ‘국제 규제 흐름과 거꾸로 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연간 수억개의 플라스틱 빨대가 소비되는 상황에서 생태계 및 인체 위해 우려가 다시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최근 급증한 생분해 플라스틱 빨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름과 달리 자연 상태에서 분해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일반 플라스틱과 섞이면 재활용 공정을 오히려 망가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와 환경단체 모두 “생분해 확대는 새로운 환경 부담을 키우고 전체 폐기물 체계를 위협한다”며 정부의 방향성을 문제 삼고 있다.
이 같은 정책 혼선의 직격탄은 종이빨대 제조업계로 향했다. 정부 정책을 믿고 설비와 인력을 확충한 업체들은 규제 유예 발표 이후 매출이 급감해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최광현 리앤비 대표(전국종이빨대생존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정책을 믿은 죄밖에 없다”며 “17개였던 업체가 6개로 줄었고 대부분 파산 직전이고 설비 투자가 고스란히 부채로 남았다”고 호소했다. 일부 업체는 버티기 위해 대표 개인 자산을 처분한 사례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정부 정책을 믿고 산업 전환에 나선 기업들이 피해를 본 것은 정부의 예측 실패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정책 변경이 시장에 미친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며 뒤늦게 업계 지원책 검토를 약속했다.

이번 사안은 정책 신뢰, 산업 투자 안정성, 환경 보호라는 세 요소가 동시에 충족되지 않을 경우 어떤 혼란이 발생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종이빨대 업계는 생존을 위해 ▲재활용성 개선 기술 ▲원가 절감 설비 안정화 ▲‘국가 표준 규격’ 제정 ▲친환경 인증 기준 명확화 등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환경성과 산업성, 소비자 수용성을 모두 반영한 일관된 정책 틀을 다시 짜야 한다”며 “정책을 믿고 투자한 기업이 더 이상 피해자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