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실종자·도피 사범 추적 20년
취업 사기 최근 두바이 등 이동
동남아 범죄 조직 실세는 중국
상식적 월급 아니면 경계해야
60년 만에 다시 만난 남매들
재산 상속·입양, 혼전 조사도
사건 절반은 폭력조직과 접촉
수십년간 쌓은 네트워크 핵심
[천지일보=이솜 기자] 캄보디아에서 한국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고수익 일자리를 미끼로 한 ‘취업 사기’에 속아 현지로 간 뒤 온라인 도박·로맨스 사기 조직에 붙잡혀 강제 노동과 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한국 정부는 10월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 ‘여행 금지(코드 블랙)’를 발령했다.
이 난장판의 맨 끝에서 가족들이 붙잡는 마지막 끈이 있다. 경찰도, 외교부도 아닌, 해외에서만 20년 넘게 ‘사람 찾기’를 해온 국제탐정이다. 국내에서는 도청·몰카 탐지와 차량 위치추적기 탐색 같은 보안 업무를 맡고 실질적인 본업은 “해외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라고 말하는 국제탐정 손해영 대표다.
손 대표는 “해외 사건의 절반은 폭력 조직과 얽혀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동남아와 중동, 미주 각국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우리의 요원, 우리의 네트워크”라고 부르며, 이 점이 국내 탐정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고 강조했다. 연락두절된 사람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평균 1억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가격표도 숨기지 않았다.

◆“빚 갚으려 캄보디아서 일하는 경우도”
손 대표는 먼저 요즘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캄보디아 실종 사건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이 캄보디아·필리핀·태국·베트남으로 건너가 ‘취업 사기’에 빠져 온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조직들이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를 비롯한 다른 국가로 많이 이동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원래 이런 범죄 조직들은 캄보디아뿐 아니라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도 더 심각하게 활동해왔다고 그는 지적했다.
손 대표는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캄보디아 등에서 한국 조폭들이 우두머리가 되는 경우는 드물고 실제 조직의 우두머리는 대부분 중국 쪽 사람들”이라며 “한국 조폭이 거기에서는 기껏해야 ‘중간 보스’에 그친다”고 단언했다.
캄보디아의 경우 카지노 대리 베팅 등 불법 도박과 관련된 문제로 많은 이들이 넘어갔다. 그는 최근 1년 동안 캄보디아 관련 상담만 5건을 또 2건은 실제 의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 건은 끝내 ‘실종’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손 대표는 “본인이 ‘나는 실종 아니다, 자발적으로 왔다. 성인이고 부모님께 의지 안 해도 된다’고 버티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은 우리가 데리고 나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시선에서 캄보디아 사태는 ‘피해자 vs 가해자’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언론 보도가 다루는 극단적인 폭력·감금 사례와 별개로 스스로 돈을 벌겠다고 뛰어든 ‘회색지대’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절반은 진짜 강제적인 피해자고, 절반은 본인 선택도 섞여 있다.
그는 “선진국도 아닌 나라에서 한국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준다는 얘기 자체를 믿으면 안 된다”며 전문직·특수 기술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월 천만원, 오백만원을 쉽게 준다는 말은 애초에 거짓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촌서는 혼전 조사 의뢰 많아
캄보디아 실종처럼 긴박한 사건만 있는 건 아니다. 손 대표가 ‘가장 보람 있었다’고 꼽은 사례는 60년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준 사건이다.
세 자매가 있었다. 같은 핏줄이지만, 아버지 재혼으로 계보가 갈라져 한쪽은 미국에, 한쪽은 한국에 흩어져 살았다. 막내 남동생은 평생 ‘미국에 누나가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두 살·세 살 때 이후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처음으로 배다른 오빠를 본 겁니다. 오빠 쪽에서도 ‘누나가 있다’고만 알고 있는 상태였죠. 호적상 서로 존재가 안 찍혀 있는 상황이었고요.”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퍼즐이 맞춰졌다. 미국에 사는 누나, 한국에 남은 동생, 그리고 또 다른 배다른 언니까지. 이들이 다시 연결된 데에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부모님과 이모 명의로 된 수백억원 짜리 땅 때문이었다. 상속권자인 자매들을 찾아야했던 상황이다.
끝내 그는 60여년 만에 남매를 다시 연결했다. 이들은 전화와 화상통화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고 동시에 상속 문제도 정리할 수 있었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으로는 해외 입양아를 찾는 의뢰가 있다. 한국에서 미국·덴마크·프랑스 등으로 입양 보낸 아이들을 다시 찾고 싶다는 의뢰다.
또한 강남 등 부촌에 거주하는 자산가들로부터 딸이나 아들의 결혼 상대방에 대한 혼전 조사를 의뢰받는 경우도 잦다고 손 대표는 말했다. 상대방이 미국인, 영국인 등 외국인이거나 해외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일 경우, 학력, 혼인·이혼 기록, 재무제표, 재산 취득 과정, 그리고 범죄 이력 등도 조사한다.
◆도피자는 자신 찾아낸 자체가 ‘공포’
손 대표는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자 국내 탐정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로 수십년간 구축해 온 인적 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국내에 유일하게 해외 조사가 가능한 곳”이라며 자신의 일은 경찰청 고위 간부 출신이나 국정원 출신이라도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네트워크는 미국 LA 사무실을 중심으로 캐나다, 일본,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뉴질랜드, 호주, 영국 등으로 뻗어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여행하고 이민 가는 나라들이다.
이 가운데에서 물론 위험도 있다. 해외에서 사기 조직과 조폭, 부패 경찰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묻자, 그는 “위험한 적 많다. 해외 사건의 절반은 폭력 조직이 연계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그러다 보니, 그가 현장에서 마주치는 건 자연스레 현지 조폭들이다. 그는 “사건 두 개 하면 한 건은 조폭이랑 부딪힌다고 봐야 된다”며 “우리도 그때는 반 깡패처럼 한다. ‘우리가 누군지, 왜 넌 우리를 건드리면 안 되는지’를 보여줘야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조폭에게 직접 주먹을 쓴다거나 영화 같은 액션을 벌인다고 말하진 않는다. 대신 ‘존재 자체’를 보여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느끼는 건 ‘우릴 어떻게 찾았지?’에요. 예를 들어 100억원 들고 해외로 도피해 6개월 잘 살았는데 한국에서 아무도 못 찾아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앞에 나타났어요. 그 순간 이 사람은 알아요. 우리가 보통 스케일이 아니라는 걸.”
당연히 위협도 따라온다. 그는 “죽이니 살리니 협박은 일상”이라며 “그렇지만 그들이 아직까지 몸을 실제로 건드린 적은 없다. 그런 거 다 겪어본 사람들이라, 크게 개의치도 않는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협박을 크게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역시 그의 네트워크에 있다. 그는 “예를 들어 일본에 어떤 조폭이 있다고 치면 우리는 중간급이 아니라 우두머리급 라인이 있다. 그 라인을 통해 ‘누구누구 데리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찾는다, 보내줘’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필리핀 같은 곳에선 이 라인이 더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그는 “‘홍길동이란 애 어디 있냐’고 라인에 던져 놓으면, ‘서울·대구·부산에는 없다, 좀 시간 달라’ 이런 식으로 답이 온다. 며칠 뒤 ‘건강은 괜찮고, 어디 있다’라는 연락이 오면, 우리가 들어가서 데려오거나 그 나라 경찰에 익명으로 제보해서 강제송환 루트를 타게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조폭과 일했다가, 나중엔 그의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역시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는 사람 찾기 의뢰를 받을 때, 육하원칙에 따라 30개가 넘는 질문지를 채운 뒤에야 계약을 체결한다고 전했다.

◆“첫인상으로 사람 판단해선 안 돼”
이같이 위험한 일을 하는 만큼 국제탐정의 가격표는 저렴하지 않다. 손 대표는 “해외 실종·납치돼 있는 사람을 데리고 올 때는 보통 1억 정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 비용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조사비’다. 그는 “조사비는 2천만원에서 4천만원, 보통 3천만원 전후다. 국가·사건 난이도에 따라 다르다”고 덧붙였다.
조사 단계에서 소재를 파악하면, 그는 그 증거를 의뢰인에게 보여준다. 이후 본격적인 구조·송환 단계로 넘어가면, 성공보수 개념으로 나머지 금액이 붙는다. 그는 이 구조 비용까지 합쳐 “납치·감금된 사람 한 명 데려오는 데 통상 1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래서 대형 투자 사기 사건에서는 피해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려 돈을 모아 그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20년 넘게 사람을 추적하고 관찰해온 그에게 “사람을 보는 기준이 달라졌느냐”고 묻자 손 대표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보니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엔 시대가 험해졌다는 체감도 크다고 손 대표는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19 이후로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배달 음식, 집콕, 경기 침체… 사람들 사이 교류가 줄어드니까 묻지마 범죄, 생뚱맞은 살인 사건이 늘어난 것 같다”며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세상이 됐고, 전반적으로 정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그는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든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30년, 60년 동안 못 만난 가족이 저희 때문에 다시 만나는 순간이 있어요. 화상통화로 얼굴을 보고, 울면서 인사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 ‘그래도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 대표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돈을 받지 않고 사람을 찾아주는 ‘재능 기부’도 한다고 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 사연이 너무 깊어서 도저히 외면하기 힘든 의뢰자들이다.
손 대표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가족이 끊긴 사람들의 행방을 쫓고 있다. 국가 간 외교와 인권논쟁, 거대 범죄 조직과 조폭의 세계, 그리고 부모·형제·연인의 사연이 한 몸처럼 뒤엉킨 그 경계에서 ‘사람을 찾는 일’은 여전히 그가 선택한 직업이자 자부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