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구상 13개국 찬성해
가자 과도기 구조 윤곽 나와
평화위원회·안정화군 배치

하마스 비무장화 등은 모호
이스라엘 팔 국가 수립 반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위원들이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위원들이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가자지구 미래 구상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지난 2년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를 평화로 이끌기 위한 미국의 노력을 국제사회가 뒷받침한 중대한 단계로 평가된다.

AP,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안보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의제로 공식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발표한 가자지구 평화구상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5개 이사국 중 비상임 이사국인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찬성했으며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기권했다. 거부권을 행사한 나라는 없었다.

결의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20개 항의 휴전안’을 공식 지지하며 가자지구의 향방이 ‘임시 국제안정화군(ISF)’의 배치와 ‘평화위원회(BoP)’가 이끄는 과도 통치 체제로 넘어갈 수 있게 했다.

이번 결의안은 재건·치안·국경 관리·비무장화 등 가자지구 핵심 과제를 국제적 틀 속에서 진행하게 한 첫 공식 청사진이다. 그러나 하마스의 강력한 반발과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 반대 입장, 팔레스타인 내부 개혁 조건 등이 복잡하게 얽히며 향후 전개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결의안 채택으로 가장 큰 변화는 가자지구에 안정화군이 투입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결의안은 안정화군의 역할로 가자지구 비무장화 과정의 보장과 비국가 무장단체들의 무기 완전 폐기를 명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하는 평화위원회가 과도 행정기구가 돼 재건과 경제 회복까지 감독하도록 한 것은 가자지구의 정치·경제 구조를 ‘전환기 관리 체제’로 재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1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된 주택의 잔해에 둘러싸인 파손된 아파트에 서 있다. (출처: 뉴시스)
1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된 주택의 잔해에 둘러싸인 파손된 아파트에 서 있다. (출처: 뉴시스)

◆모호한 결의안, 하마스 반대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하마스의 무장을 어떻게 해제할 것인가이다.

결의안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되 이는 비무장화 기준과 일정표에 연동된다고 규정했다. 즉, 안정화군이 충분한 통제권을 확보해야만 이스라엘군의 후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전후 가자지구가 자율적 운영 능력을 갖추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마스는 결의안 통과에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안정화군이 비무장화 임무까지 맡게 되는 것은 중립성을 잃고 점령군 편에 서는 것”이라며 무장 해제는 절대 불가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결의안은 안정화군이 국제법에 따라 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하고 있다. 유엔 용어로 ‘무력 사용’을 포함한다는 의미다. 이는 결의안이 사실상 하마스와 국제군의 충돌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안정화군 파병을 약속한 국가는 없다.

결의안의 모호한 표현들도 문제다. 해당 결의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평화위원회에 전반적인 감독 권한을 부여하지만 위원회 구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위원회는 유엔에 보고해야 하지만 유엔이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요구에 구속되지는 않는다. 또 가자지구의 일상적 행정과 서비스 제공을 담당할 팔레스타인 기술관료위원회를 신설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누가 여기에 참여할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또 하나의 쟁점은 팔레스타인 국가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거의 2주간 이어진 협상 과정에서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 측은 팔레스타인 ‘자결권’ 관련 문구를 강화하라고 미국에 요구해 왔다. 이에 결의안은 ‘조건 충족 시’ 팔레스타인 자결권과 국가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로가 열릴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구체적인 시점이나 보장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 경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개혁과 가자 재건의 진전이라는 조건 아래서만 논의가 가능해 향후 협상이 주요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결의안에 포함된 ‘국가 수립 경로’ 문구를 두고 내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여전히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고 가자지구 비무장화를 쉬운 방법이든 어려운 방법이든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구축하려는 ‘전후 공동관리 체제’와 이스라엘의 전략이 충돌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결의안을 환영하며 이행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자치정부의 지지가 러시아의 거부권을 막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은 결의안이 유엔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기권했지만 결과적으로 양국은 통과를 막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 유엔대사는 이들 국가들의 지지를 확인했다고 하면서도 결의안이 안보리의 역할을 포함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강하게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권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역사적 순간’으로 평가하며 앞으로 몇 주 안에 평화위원회의 구성원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아랍 국가들은 결의안 채택을 환영하며 국제군 파견 가능성을 열어두되 유엔의 공식 승인이라는 조건을 갖춘 점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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