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한국 여자배구가 45년 만에 아시아 청소년 16세 이하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승여 금천중 감독이 이끈 U-16 여자대표팀은 지난 9일 요르단 암만에서 끝난 U-16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 대만을 차례로 꺾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배구 우승은 국내에서 개최됐던 1980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때 현재 대한배구협회 여자경기력향상위원장인 박미희 KBS N스포츠 해설위원을 주축으로 한 대표팀이 우승한 이후 무려 45년 만이다.

오랜만에 여자 청소년이 아시아 정상에 올랐지만 한국 배구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동안 깊은 침체에 빠지며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배구는 2021년 2020 도쿄올림픽에서 ‘수퍼스타’ 김연경을 앞세워 기적같은 ‘4강 신화’를 연출했다. 일본과 투르키예 등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던 환희는 그만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후 한국 여자배구는 서구팀은 물론 대만, 태국 등에게도 패하고 극전 직하하며 국제 수준과의 현격한 격차를 실감해야 했다.

남자 배구는 더 깊은 터널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5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8년 출범한 상위 16개 국가가 출전하는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도 첫해(2018년) 최하위에 머물러 다음 대회 출전권을 잃은 이후 다시는 그 수준에 돌아가지 못했다. 한때 아시아 정상을 유지하던 실력은 태국에도 패하며 중상위권으로 밀려났다.

이 같은 부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의 결과다. 제도와 저변, 프로구조, 대표팀 운영 등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문제점이 누적돼 있다.

한국중고배구연맹 이호철 수석부회장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 ‘한국 배구의 현주소와 구조적 과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단순히 경기력 저하가 아니라, 제도적 결함과 인재 육성 시스템 부재가 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배구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력 저하가 아니라 제도·저변 ·프로구조·대표팀 운영이 복합된 총체적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배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선 제도와 시스템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기본적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엘리트 중심 소수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다수가 참여하고 우수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생태계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일본 배구의 사례는 한국 배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직력과 분석력이 좋은 일본 배구는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 의미가 깊다.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과 남미 팀들에 밀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일본이 보여준 셈이다. 일본 배구는 2000년대들어 장기적인 계획과 체계적 시스템으로 국제 경쟁력을 되살려 놓았다.

이웃나라 일본의 성공은 한국배구에게도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혁신과 개혁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일이다. 한때 남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일본은 수십년간 아시아 정상 자리도 위협받았다.

한국도 일본과 같이 기본적인 구조를 혁신하지 않고서는 그동안의 전철을 계속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여자 청소년이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일으킨 불씨가 다시 꺼지지 않으려면 근본적 변화가 따라야 한다.

한국배구는 2020 도쿄올림픽 여자 4강 신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한국 배구가 ‘변화의 용기’를 보여주며 일본과 같이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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