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삶, 피로 물든 달… ‘형사 해리 홀레’의 귀환

상처로 빚은 추락과 부활의 노르딕 누아르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3년 만에 돌아온 ‘해리 홀레’ 시리즈 13권 ‘블러드문’은 북유럽 범죄소설의 전설이자 인간 심연의 해부자로 불리는 작가의 저력을 다시금 증명한다.

‘칼’ 이후 긴 침묵을 깨고 등장한 이번 작품은 한때 세상을 구하려 했던 형사가 이제는 한 사람의 잔존한 양심으로서 다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야기다.

로스앤젤레스의 허름한 술집에서 하루하루를 술로 연명하던 해리 홀레는 우연히 알게 된 중년 여성 루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오슬로에서는 부동산 재벌 뢰드가 주최한 파티 이후 여성들의 실종과 살인이 연이어 발생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 뢰드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해리를 수사에 끌어들인다.

해리는 루실의 빚을 대신 갚는 조건으로 노르웨이로 돌아가 죽음을 앞둔 심리학자, 비리 경찰, 택시 기사와 함께 진실의 파편을 좇는다.

이번 작품에서 ‘블러드문’은 단순한 제목을 넘어 강렬한 상징으로 기능한다. 개기월식 중 붉게 물든 달빛처럼, 해리의 삶은 피와 어둠, 희미한 희망이 뒤섞인 색을 띤다.

연쇄살인의 피비린내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죄와 속죄의 경계를 더듬으며 ‘다시 살아보기 위한 수사’를 이어간다.

요 네스뵈는 시리즈 내내 인물의 심리적 균열과 폭력을 정교하게 직조해왔다. ‘블러드문’에서도 첨단 기술 범죄, 복잡한 인간 관계, 미묘한 심리전이 촘촘히 맞물리며 노르딕 누아르 특유의 냉정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세상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남자, 해리 홀레. 그의 피로 얼룩진 달빛 아래, 또 한 번의 추락이 새로운 부활이 될 수 있을까.

요 네스뵈 지음 / 남명성 옮김 / 비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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